김범석 도쿄 특파원
실제로 도쿄 신주쿠(新宿), 신바시(新橋) 등 회사 밀집지역 내 패스트푸드점은 저녁 시간에 혼자서 맥주를 마시는 직장인들로 넘쳐난다. 웰빙 열풍에 따른 ‘패스트푸드 기피’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최근 잇달아 맥주를 판매하거나 ‘햄버거+맥주’ 세트를 내놓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몇 년 전까지 이자카야나 고급 술집 주변에서 단체로 ‘부어라 마셔라’ 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색다른 풍경이다.
일본 패스트푸드 업체들의 타깃은 ‘후라리만(フラリ―マン)’이다. 후라리만은 ‘후라후라(갈팡질팡)’와 ‘샐러리맨’의 합성어로 퇴근 후에도 집에 가지 않으려는 직장인을 뜻한다. 사회 심리학자 시부야 쇼조(澁谷昌三)가 처음 쓴 말로 처음에는 ‘직장인들이 가정을 지키지 않는다’며 우려가 나타났지만 1인 가구와 미혼 남녀 비율이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지금은 ‘퇴근 후 혼자 밤문화를 즐기는 사람’으로 뜻이 바뀌었다.
이미 일본 내에서 근무 방식 개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오후 3시에 일을 마치고 일찍 귀가하도록 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해 캠페인 도입 당시 “야근을 없애고 저녁 시간이 늘어나면 다양한 산업에서 매출이 증가하고 이것이 나라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에서 패스트푸드점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후라리만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일본의 후라리만처럼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 모니터와 회사 서류를 심각하게 쳐다보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공짜 야근’을 하는 것이다. 정책을 만들고 무작정 시행만 하는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하루빨리 개선안을 내놓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햄버거 옆에 업무 서류를 놓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