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대패와 끌에게 배우는 ‘삶의 의미’

입력 | 2018-08-22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끌이 내게 무엇을 말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장인의 공부: 우리는 왜 만들고, 그 일이 왜 중요한가’(원성완 옮김·유유)라는 책을 쓴 미국의 유명 가구 제작자이자, 목공 교육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피터 콘이 며칠 전 수업 중에 한 말이다.

처음 이틀 동안은 땀 흘리며 끌을 갈아야 했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북쪽 끝 메인주에 있는 소도시에서 진행되는 목공 교육 프로그램에 한 달 일정으로 참여 중이다.

지난 20년 동안 컨설팅을 하며 머리 쓰는 일을 해온 내가 앞으로는 제2의 직업으로 몸을 쓰는 목수가 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목공을 배우고, 책으로만 보던 아티스트들과 직접 대화를 하면서 삶과 일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 기본의 중요성이다. 이곳에는 나름대로 목공일을 해왔지만, 기본기를 다시 다지기 위해 온 사람들이 제법 된다. 목공에서 기본기로 강조하는 것은 끌과 대패를 사용하는 법과 날을 숫돌에 갈아 날카롭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콘은 “끌한테 헛소리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끌의 날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어디 목공뿐이겠는가. 내 삶과 일에서 기본기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기본기를 계속 다듬기 위해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가?

둘째, “진짜 많이 하라”는 것이다. 첫 주 수업을 맡았던 뉴욕주에서 온 아티스트 조슈아 보걸은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예술 하러 가야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간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규율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반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나무 수저에 대해 멋진 책을 썼는데, 수저만 1000개 이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동 수업 진행을 맡았던 또 다른 예술가 크리스틴 르비에는 미국 공영방송의 진행자로 유명한 아이라 글래스의 말을 읽어주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 많이 일하는 것이다. 스스로 마감일을 잡아서 매주 하나의 이야기를 끝낼 수 있도록 하라. 간극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작업의 양을 통한 것이며, 결국 여러분의 야심처럼 훌륭한 작품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내게는 반복적으로 수행하여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예술의 경지에 오르고 싶은 기술이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과는 상관없이 직장에서 시키는 일만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가?

셋째, 삶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제일 끝에 있는 이 작은 마을에 저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은 단지 의자나 나무 수저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콘이 책에 적었듯 이들은 목공소에서 땀을 흘리면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변화하기 위해서 온다.

실제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는 시카고에서 온 변호사, 뉴욕에서 온 투자은행가, 애틀랜타의 대학병원 의사, 보스턴에서 온 컨설턴트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이지만, 이곳에서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함께 숫돌에 끌을 갈고 대패질을 하며 자신에 관해 배우고 있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곳은 인구가 고작 3000명인 소도시로 로밍을 해온 휴대전화도 메시지가 터지질 않는다. 그 흔한 편의점도 ‘별다방’도 없으며, 그나마 하나 있는 카페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저녁이 되면 완전한 침묵과 어둠에 싸인다.

하루 8시간씩 대패질과 끌질을 하면서 이들이 내게 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곱씹어 본다. 내가 얼마나 참을성이 없으며 성격이 급한지, 삶과 일에서 몸과 머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내가 지난 20년 동안 해온 일의 의미는 무엇이고 앞으로 20년은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게 된다. 유명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짐 캐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자신이 꿈꿔왔던 모든 것을 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삶의 답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은 지금 어디쯤 와 있고,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인지 때로는 멈추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여름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