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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경제 투톱’ 표현에 불쾌감… 김동연 “張실장은 스태프”

입력 | 2018-08-22 03:00:00

정책 엇박자 ‘불편한 동거’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경제 투톱이 서로 불을 질렀다. 함께 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고용 쇼크를 논의하기 위해 일요일인 19일 오후 소집된 당정청 회의 이후 청와대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대책을 논의하려고 만든 자리에서 이른바 ‘김 앤 장’으로 통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또다시 공개적으로 충돌했기 때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두 사람을 겨냥해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 달라”며 경고를 날렸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21일 다시 한 번 갈등설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제 시각부터 출신 배경까지 너무도 이질적인 경제 투톱의 갈등이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도 ‘굿 케미스트리’를 연발하고 있는데, ‘김 앤 장’은 왜 이렇게까지 파열음을 내는 것일까.

○ 재무전문 금수저 vs 거시경제전문 흙수저

이 둘은 우선 출신 배경이나 가정환경부터가 다르다.

4대에 걸친 호남 명문가 집안인 장 실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하면서 1996년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었다. 누나는 2005년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장하진 전 장관이며 ‘사다리 걷어차기’ 등의 저서로 유명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사촌동생이다.

김 부총리는 대한민국 관료 역사상 손꼽히는 자수성가 케이스다. 11세에 소년가장이 된 뒤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을 전전한 그는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해 야간대를 다니다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연속 합격하며 지금까지 성공 신화를 써왔다.

두 사람은 경제 철학과 정책 접근 방식도 다르다. 아이비리그인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재무학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장 실장은 양극화를 핵심 문제로 지목하고 재벌체제에 비판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경제기획원(EPB) 출신으로 거시경제 기획을 주로 했던 김 부총리는 규제개혁을 강조해왔다. 김 부총리 같은 기획원 출신들은 재무 분야 관료들이 거시 정책을 논하는 것도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전엔 기획원과 재무부는 서로 좋아하는 스포츠도 야구와 축구로 갈릴 정도로 많이 달랐다. 거시 전문가와 재무 전문가는 다른 분야 종사자”라고 말했다.

성격도 다르다. 장 실장은 청와대 회의 때마다 농담을 건네 가며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말수가 많지 않다. 표정 변화가 없어 한때 ‘포커페이스’라는 말까지 들었다.

서로 다른 경제 투톱은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공개된 것 이상의 마찰음을 냈다. 정부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기재부가 정부지원금 지급 시기 문제를 제기하자 장 실장은 기재부 간부를 불러 ‘복지부동 아니냐’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김 부총리를 겨냥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정책실이 부활한 것도 둘의 마찰에 기름을 부었다. 기재부에선 “정책실이 상왕처럼 군다”는 불만이 많다. 정책실은 올 초 기재부의 세수 예측 실패로 예산 집행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점을 들어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기재부가 별동대처럼 혁신성장본부를 꾸리면서 혁신성장 ‘다걸기’에 나섰지만 정책실에서 혁신성장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고 귀띔했다.


○ 대놓고 “장하성은 스태프”라는 김동연

김 부총리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작심한 듯 장 실장에 대한 속내를 밝혔다. 그는 ‘고용대란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란 질문에 “장 실장은 청와대 안에 계신 스태프다.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이고 자신이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라는 얘기다. 김 부총리는 “다소 간의 (견해) 차이는 있고 생각이 100% 같은 것이 건설적인 것도 아니다”고 말한 뒤 “(장 실장과는) 전화도 자주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장 실장은 취임 초 경제 투톱이란 표현에 불쾌감을 보였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당 대표 때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장 실장은 자신이 김 부총리와 레벨이 다르다고 봤을 것”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의 상황을 맞은 청와대는 봉합에 나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경제 투톱으로서 목적지에 대한 관점은 같지만 실행 과정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차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에선 둘의 불협화음을 마냥 방치할 수 없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둘의 갈등이 경제정책 안정성 자체를 해치면서 ‘김 앤 장 리스크’라는 말까지 나도는 지경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투톱의 조화가 어렵다면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을 걸라”고 한 만큼, 누가 더 고용쇼크 해소에 기여하느냐에 따라 ‘불편한 동거’를 어떻게 끝낼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문병기 weappon@donga.com / 세종=송충현 / 장원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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