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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직지 130년 만에 고국으로 귀향 끝내 무산

입력 | 2018-08-23 15:29:00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의 첫 국내 전시가 끝내 무산됐다. 직지를 대여하는 조건으로 프랑스가 요구한 ‘한시적 압류 면제법’ 입법이 정부 반대로 보류됐기 때문이다. 융통성 없는 행정이 130년 만의 직지 귀향을 좌절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법무부는 노 의원이 올 3월 발의한 압류 면제법에 대해 “법원의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국회에 법안 심사 보류를 요청했다.

법안이 상임위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면서 올 연말로 계획했던 직지 대여 전시는 입법 및 전시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할 때 불가능해졌다. 앞서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올 12월 ‘대(大)고려전’을 기획하면서 프랑스에서 직지를 빌려오기 위해 압류 면제법 입법을 추진했다. 압류 면제법은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국내에 들여와 전시할 때 압류나 몰수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해당 법안에서 압류면제 결정을 문체부 장관이 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원칙적으로 압류 또는 압류 면제 결정은 법원의 권한이기 때문에 해당 법안이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시민단체가 ‘압류 면제법이 문화재 환수에 역행한다’며 반대한 점도 입법 무산에 영향을 끼쳤다. 문체부 당국자는 “법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법 감정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공익목적 전시에 한해 최대 2년간 압류를 일시 금지하는 것이어서 환수 포기가 아니라는 게 박물관의 설명이다.

문화계에서는 정부가 압류 면제법 제정에 반대한 일이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제국주의 시절 침탈한 문화재 반환 문제 때문에 해외전시가 차질을 빚자 미국과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정부는 압류 면제법을 제정했다.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