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로 만든 고등교육재단… 박사 747명에 장학금 혜택 농장에 선발 유학생 초대해 고기 굽고 축구하던 소탈함
故 최종현 회장
올해로 서거 20주기를 맞는 최종현 회장을 추모하면서 다소 엉뚱하고 장황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최 회장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찍을 수 없는 다양하고도 커다란 점을 찍을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난했던 한국 젊은이들은 학문에 대한 꿈이 있어도, 자신의 힘으로 유학을 갈 길이 없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선진국의 학문과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점들을 찍을 수 있게 해 줬다.
필자도 유학과 교수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점을 찍고, 또 이 점들을 연결해서 현재 대학 총장이라는 직책까지 이를 수 있게 됐다. 최 회장이 사재를 들여 만든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숫자가 올해로 747명에 이르고, 각자 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출중한 리더로 성장하여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 회장의 인재 양성에 대한 의지가 만든 결과다. 당시 유학생 1년 치 학비는 몇 년 치 회사원 연봉에 달할 만큼 거액이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한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철학에 잘 드러나 있지만, 인간과 나무는 공통점이 많다고 종종 말했다. 모두 서서히 자라며, 가꿀수록 성장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아무리 숨은 능력이 있는 인재라도 물이 없으면 못 자라는 나무와 같고, 가꿀수록 더 풍성한 숲으로 변해간다는 지론을 이야기했다. 그래서인지 최 회장은 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던 즈음 산에 밤나무 묘목을 많이 심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고등교육재단 홈커밍 데이인 10월 3일에는 그 밤나무 숲에서 수확한 맛난 밤을 참석자들에게 한 상자씩 선물로 준다. 인재가 결실을 맺듯, 밤나무도 열매를 맺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린 인재와 묘목의 공통점을 깨달아서인지 최 회장이 출국 인사를 하는 학생들에게 “마음에 씨앗을 심어라”라고 당부하던 것을 필자는 기억한다. “비전과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최 회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단지 씨앗 한 톨을 뿌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필자는 마음속 씨앗의 신비함을 깨닫는다. 물을 주고 가꿀 때도 자라지만,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나태할 때도 자라난다는 신비함이다. 그래서 필자는 최 회장의 씨앗의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한다. 필자가 그랬듯이, 학생들은 자신이 평생 지향할 방향을 설정한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