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오기 전에/사이먼 피츠모리스 지음·정성민 옮김/216쪽·1만2000원·흐름출판 아일랜드 영화감독인 저자, 갑작스럽게 희귀병 발병 生에 대한 순수한 욕망으로 ‘온몸을 불사르며’ 견뎌낸 삶과 고통의 순간 기록
영화감독 사이먼 피츠모리스가 병마와 싸우면서 만든 동명의 다큐멘터리 ‘It‘s Not Yet Dark’(2017년 개봉)의 한 장면. 바다를 바라보는 사이먼과 아내 루스의 뒷모습은 결코 쓸쓸하지 않다. 처연할지언정, 그들은 사랑하고 또 사랑했기에. 흐름출판 제공
어쩌면 지루하거나 불편할 수 있다. 그만큼 삶의 끝자락에 선 이들이 남긴 책은 꽤나 많다. 때론 과한 감정이 버겁고, 혹은 덩달아 가슴을 짓눌리는 걸 피하고도 싶다. ‘어둠이…’ 역시 똑 닮은 체험이 될지도. 하지만 최소한, 이 책은 ‘찬란하다’.
사이먼 피츠모리스는 병을 앓기 전 히말라야 산행에 나서 영화를 찍을 정도로 건강하고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흐름출판 제공·ⓒTHE IRISH TIMES
2010년경. 저자는 큰 위기를 겪는다. 폐렴으로 호흡 곤란에 빠졌다. 의료진조차 ‘마지막’을 언급하며 인공호흡기를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했다. 어떤 장치를 달고서라도 버티려 한다. 그게 자신의 순수한 욕망이니까. 사랑하는 이들 곁에 1분 1초라도 더 머물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저자가 말년에 찍은 가족사진. 아내 루스와 다섯 아이를 낳았다. 잭과 라이피를 키우다 루게릭병 판정을 받았을 때 루스는 셋째 아덴을 임신한 상태였다. 막내 쌍둥이 세이디와 헌터는 저자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거의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가졌다. 부부는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흐름출판 제공·ⓒ Marc Atkins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큰 매력은 문장이다. 간결하고, 담박하다. 부질없는 미사여구는 걷어내고, 적확한 단어만 골라낸다. 실은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란 생각도 들긴 했다. 온몸이 마비된 뒤, 눈동자 움직임으로 글을 쓰는 ‘아이 게이즈(eye-gaze) 컴퓨터’로 작업했으니. 물론 그게 글이 지닌 품격을 흠집 내진 않지만.
저자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판정보다 5, 6년을 더 산 셈이다. 하지만 감히 추측건대, 그는 만족하지 않았으리라.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을 테다. 그런 자신과 아내, 가족을 자랑스러워했을 게다. “나는 온몸을 불사르며 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죽음과 싸우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삶과 싸웠다. 원제 ‘It‘s Not Yet Dark(아직 어둡지 않다)’가 더 맞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