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복무기간 줄고 평일 외출까지… 확 달라진 군대생활 일과후 계급장 떼고 ‘게임 배틀’… 나홀로 독서하며 ‘피자 한판’
“시간 보낼 곳도 마땅치 않은데, 군 생활이 더 지루해지지는 않을지.”
군대 창설 이래 처음으로 ‘평일 병사 외출’이 시범 실시된 지 3일 만인 22일 저녁 강원 철원군 서면 와수리. 주민들은 인근 3사단 백골부대 병사들의 평일 외출을 환영하면서도 아쉬움과 일부 우려도 나타냈다.
병사들의 평일 외출까지 시범 실시될 정도로 군 복무 및 생활환경은 변하고 있다. 복무 기간도 짧아지고 월급도 크게 올랐다. 언 손으로 조개탄을 태워 난방을 하던 나무 평상 내무반에는 침대와 난방 시설이 들어섰다. 눈 치우고 풀 뽑고 삽질하던 ‘부대 주변 정리’도 단계적으로 민간에 넘겨진다. 군 생활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대학도 나온다. 군 복무 기간이 ‘잃어버린 시간’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22일 강원 철원군 서면 와수리의 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외출 나온 인근 3사단 백골부대 병사들이 이곳저곳에 앉아 햄버거 등을 먹고 있다. 그러나 병사들을 평일 외출을 나와도 복귀 전까지 3시간 남짓 동안 부대 주변에서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철원=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22일 수요일 오후 6시 반경 강원 철원군 서면 와수리의 A 중화요리집. 평일 저녁에는 주로 가족 단위 손님이 찾는다는 이곳에 군복을 입은 병사들 한 무리가 들어와 주문한 메뉴별로 방을 찾아가는 소리로 소란했다. 인근 3사단 백골부대 병사 15명이 선임 병사와 함께 와서 같은 음식을 주문한 병사들끼리 방을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국방부는 이달 20일부터 시범적으로 일부 부대에 한해 ‘평일 병사 외출’을 시작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병영 생활은 평일에도 병사들이 병영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는 것까지 허용되고 있다.
신세대 취향에 맞게 창의성도 기르고 선후임 병사들 간의 소통도 강화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우리 때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세월 좋아졌다” “저러다 군기(軍氣)가 유지되겠어”라고 말하면 ‘꼰대’ 소리 듣는 세상이 됐다.
○ PC방에서 선·후임이 한편 되어…
A 중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방에 앉아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게임에 열중했다. 몇몇은 계급을 잊은 듯 서로 편하게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음식점 사장은 “휴가 나오거나 부대 밖 작업을 나왔던 병사들이 평일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무리로 나온 것을 보니 외출 시범 지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8시가 넘어 PC방을 나온 이들은 패스트푸드 점에서 멕시칸 칠리 수프를 뿌려 먹는 양념 감자와 햄버거 한 개, 콜라, 아이스크림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선임자인 김모 병장(23)은 “3명 모두 게임을 좋아해 함께 해보고 싶어서 나왔다. 일병 후배가 최근 고민거리가 있는 것도 같아 기분 전환도 시켜줄 겸 외출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대 안에만 있으면 답답한데 나오니 마음도 가볍고 좋다”고 말했다. 이모 일병(21)은 “요즘 진로 고민이 많아 밥맛이 없어서 아이스크림만 먹었다”며 패스트푸드점을 나온 후에는 직업 안내 책자를 봐야 한다며 와수리에 하나밖에 없는 서점인 ‘고향 서점’으로 들어갔다.
외출 병사처럼 보여 거리에서 말을 건네자 정모 상병(22)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 중인데 평일에도 외출이 가능하다는 뉴스를 봤다”며 세상 변화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나는 비무장지대 수색대 근무라 외출이 안 돼 부럽다”며 “후임병일수록 저녁 개인 정비 시간에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은데 평일 외출을 잘 활용하면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 최현수 대변인은 19일 “병사들에게 자율과 창의를 확대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평일 병사 외출 제도 시행 취지를 설명했다.
국방부는 8월부터 10월 말까지 전국 13개 부대 소속 사병의 평일 일과 후 외출을 시범 실시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전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외출은 오후 6시부터 점호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가능하다. 부대 운영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가족 면회, 민간 의료시설 이용, 소규모 단합 활동 등으로 사유가 제한되며 음주는 금지된다.
○ 지역 상권 활성화 기대… 배달 음식 가게는 ‘글쎄’
김영훈 와수시장 상인회 회장(대성약초 대표)은 “병사들이 외출을 나와도 식당, PC방 외에는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다”며 “시장 후문 주차장 부지와 바로 옆 폐업 여관 건물을 병사들을 위한 작은 영화관과 부대시설로 만들어 시장 상권과의 연계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와수리에서 젊은 병사들이 선호하는 음식인 패스트푸드나 떡볶이 가게, PC방, 2000원대 가격에 비해 큰 사이즈의 음료를 주는 ‘테이크 아웃’ 카페 두 곳 등은 22일 저녁 찾아갔을 때 외출 병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4, 5곳 PC방에는 병사들이 가득했다.
외출 병사들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은 업종별로 차이가 있었다. 중앙삼거리 인근 M이발관 사장은 “지금 병사들은 이발소보다는 미용실을 다니는 세대”라며 “일반 손님들에게 1만 원을 받고 병사들에게는 7000원을 받아도 찾아오는 병사가 없다”고 했다.
와수리에서 11년간 배달 치킨,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N치킨 사장 B 씨는 “배달을 주로 하는 가게는 병사들이 외출을 나와 매출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부대에서 대량으로 주문해서 먹기도 했는데 그런 주문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오후 8시 반이 지나자 PC방 등에서 시간을 보낸 병사들이 하나둘씩 중앙삼거리로 모여 들었다. 부대를 나올 때는 빈손이었지만 테이크 아웃 카페에서 산 커피와 음료, 책, 간식 등으로 양손이 무겁다. 허모 일병(22)은 “대학 다닐 때 친구들끼리 몰려다닌 기억이 생각나 좋았는데 시간이 짧아 아쉽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복귀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외출 일정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PC방하고 택시는 잘되겠어”라며 외출 나왔다가 돌아가는 병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병사들의 복귀 시간이 되자 정류장에 택시들이 길게 줄을 섰다. 병사들을 실은 택시 20여 대가 줄을 지어 부대로 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3시간 남짓 병사들에게는 금쪽같은 외출이 그렇게 끝났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가는 병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부대 출입 보고와 이동 시간을 제외한 2∼3시간 동안 마음 편히 창의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시간도 여건도 부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젊음 허비? 노(NO)! 미래 준비의 시간’
올해로 건군 70년을 맞은 군대 복무 여건과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복무기간이 줄고 시범적이지만 올해 일과 후 개인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고 외출도 하게 됐다. 사회봉사, 리더십 등 군 복무 경험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는 방안까지 추진된다. 이제 군 복무 기간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통신 보안 때문에 입대할 때 개인 휴대전화는 가지고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국방부가 3월 발표한 ‘2018∼2022 군인복지기본계획’에 따르면 3분기 육해공군 시범부대에서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했다. 4분기에는 전군 확대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군은 2016년 생활관에 수신전용 공용 휴대전화도 비치해 병사들이 부모나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1988년 육군 병장 월급은 7500원이었다. “월급은 담배 몇 갑 가격밖에 안 된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병사 월급은 크게 올라 2011년 10만 원을 넘었고 올해는 40만6000원이다. 2022년까지 67만6000원으로 높일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역의무 이행자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국가책임 강화 차원에서 병사 봉급을 연차적으로 인상할 것”이라며 “전역 후 사회에 진출할 때 마중물로 활용하라는 취지도 있다”고 말했다.
군 복무기간은 6·25전쟁 이후 꾸준히 단축돼 왔다. 1959년 33개월(이하 육군)에서 1981년 30개월, 1993년 26개월, 2003년 24개월, 2011년 21개월로 점차 짧아졌다. 올해 10월 전역자부터 복무 기간을 단계적으로 줄여 2020년 6월 입대자는 18개월로 줄어든다.
군 관계자는 “병사 복무기간 단축은 현대전 양상의 변화에 맞춰 과학기술 군으로 정예화하는 국방개혁의 하나”라며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병역 부담을 완화하고 사회진출 시기를 앞당겨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병사가 정기 휴가 외에 외출, 외박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체육대회 우승 등 각종 포상을 받아야 이례적으로 외출할 수 있었다.
군 생활에서 힘든 일 가운데 하나로 꼽힌 눈 치우기, 풀 뽑기 등 ‘부대 주변 정리 업무’도 대폭 줄어든다. 점차 민간에 위탁해 처리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병사들이 본연의 임무 수행에 전념하도록 우선 일반전방초소(GOP) 지역 11개 사단을 대상으로 민간에 맡겨 처리하도록 한 뒤 2020년 전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복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1948년 국군이 창설됐을 당시 물자가 부족해 미국으로부터 군복을 보급받거나 심지어 일본 군복을 입기도 했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미군 군복과 비슷한 디자인의 정식 군복이 나왔다.
1990년 개량화된 군복은 얼룩무늬 전투복이었다. 2008년에는 디지털무늬 전투복을 도입했다. 국내 화강암을 응용한 5가지 색을 하고 있어 상대에 잘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신축성과 땀 흡수 기능도 개선됐다.
전투복도 지난해부터 스마트 섬유소재를 적용해 첨단화하고 있다. 위장 효과를 극대화하고 편의성을 강화해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내년부터 보급할 예정이다.
철원=유재영 elegant@donga.com / 황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