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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前 대통령, 삼성보고서 봤을 가능성 높다” 추정만으로 뇌물죄 추가

입력 | 2018-08-25 03:00:00

[박근혜 2심 징역 25년]‘영재센터 16억’ 뇌물판단 근거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66·수감 중)의 2심 형량이 1심보다 늘어난 것은 뇌물죄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추가 뇌물 판단 근거가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어 대법원 상고심에서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 2심 재판부 “가능성 높다” 추정

최순실, 1심과 같은 징역 20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농단’ 사건의 공범인 최순실 씨가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최 씨에게는 1심과 같은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16억2800만 원)을 2심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한 대가로 봤다. 박 전 대통령이 공범 최순실 씨(62·수감 중)의 조카가 운영한 영재센터에 도움을 주려고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해 받았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달라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봤다.

반면 1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증명돼야 한다”며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청탁도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 2월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승계 작업을 매개로 영재센터 지원을 한다는 묵시적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영제센터 지원이 뇌물이 아니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는 이를 반박하는 근거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정보가 포함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삼성 관련 보고서(2014년 7∼9월 작성)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실의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단독 면담 말씀자료(2015년 7월 25일) 등을 들었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의 보고서를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이 봤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2심 재판부는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경제수석실 말씀자료는 2심 재판부가 ‘가장 핵심적인 승계 작업’이라고 평가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미 성사된 뒤 작성된 것이었다. 이어 2심 재판부는 2016년 2월 15일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나 영재센터 지원을 요청했다면서 “이때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묵시적 청탁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후삼국시대 궁예의 관심법이 21세기에 망령으로 되살아났다”며 “묵시적 공모가 합리적 제약 없이 확대 적용되면 무고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비판했다.

○ ‘뇌물’ 강요 가해자 유죄, 피해자 무죄

법조계에서는 삼성의 영재센터 지원이 뇌물인지 여부를 놓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정반대로 갈린 것은 두 사람이 각각 영재센터 지원 ‘강요’의 가해자와 피해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의 ‘강요죄’를 인정한 2심 재판부는 뇌물죄로 처벌 수위를 높이려고 했고,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강요 피해에 무게를 두고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항소를 하지 않고 사실상 변론을 포기한 것도 2심 재판부의 추가 뇌물죄 인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판은 단 4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면담도 못 하는 국선 변호인이 변론을 했지만 재판부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2심 재판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 법정 출석을 거부함으로써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하는 국민의 마지막 여망마저 철저히 외면했다”고 질타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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