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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최악의 날씨가 만든 최고의 예술

입력 | 2018-08-25 03:00:00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눈 때문에 탄생한 명곡이 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 교향곡’이다. 체코 출신인 드보르자크가 미국에 왔다가 작곡한 음악이다.

당시 그는 미국에 왔다가 ‘블리자드’로 불리는 강력한 폭풍설을 만났다. 블리자드는 북극지방으로부터 내려오는 한파와 강한 바람과 폭설을 뜻한다. 블리자드가 미국 동부지방을 강타하면 예전에는 일주일 이상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2018년 1월에도 강력한 블리자드가 내려오면서 미국 동부지역으로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다. 수백만 가구의 전기가 끊겨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이런 기상으로 인해 동부지역에는 집집마다 지하실에 감자 등 비상식량을 챙겨둔다.

강력한 블리자드를 만난 드보르자크는 동부지역 교통 두절로 꼼짝없이 집에 갇혀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드보르자크는 열흘 동안 하루에 감자 한 개씩만 먹어가며 대작 ‘신세계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드보르자크는 창밖으로 부는 강풍과 혹한과 폭설을 보며 희망을 작곡해 나갔다고 한다. 최악의 폭풍설이 세계적인 대작을 만드는 바탕이 된 것이다.

최악의 날씨에 굴복하지 않고 최상의 오페라를 만든 베르디도 있다. 베르디는 23세에 부세토의 음악 감독에 취임하면서 결혼했다. 그러나 날씨는 그의 인생에 엄청난 슬픔을 가져왔다. 당시 기후는 소빙하기로 추위와 기근이 닥쳤고 전염병도 극성을 부렸다. 장녀가 17개월 만에 전염병으로 죽었다. 아들마저 폐렴으로 죽었다. 춥고 습기가 많은 날씨가 아들과 딸을 앗아간 것이다. 슬픔을 잊기 위해 베르디는 오페라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신작 오페라 ‘오베르토’는 대성공하면서 14회나 반복 상연되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봄에도 이탈리아는 음울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아내마저 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자살까지 기도했을 정도로 그의 삶은 최악이었다. 그러던 그는 우연히 대본 사이에서 그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가사를 보게 된다. 베르디는 불행한 히브리 노예들의 처지가 자신의 신세와 비슷하다는 공감을 한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오페라 ‘나부코’이다. 베르디의 음악 안에는 나쁜 날씨로 인한 절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교향곡의 베토벤, 실내악곡의 하이든, 가곡의 슈베르트, 피아노의 쇼팽은 각각의 분야에서 황제라 불린다. 26세에 유명한 여류 소설가였던 조르주 상드와 결혼한 쇼팽은 악화되는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지중해의 마요르카섬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당시는 소빙하기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로 겨울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렸으며 정말 추웠다. 우기가 시작되면 매일 거센 빗발이 창문을 두들겼다. 수도원의 조그만 집은 바람이 많이 불어 ‘바람의 집’으로 불렸다. 여기서 그는 후에 최고의 작품이라 불릴 곡들을 써나갔는데, 그중의 하나가 유명한 ‘전주곡집’이다. 부인 상드는 고백한다. “나는 쇼핑을 위해 아들 모리스와 함께 외출을 했다. 그런데 엄청난 비로 불어난 급류로 길이 막혔다. 결국 몇 시간이나 늦게 집에 도착했다. 쇼팽이 피아노에 앉아서 빗방울 소리를 피아노로 치고 있었다. 그는 ‘나는 이 비에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소’라고 외쳤다.” 쇼팽이 가장 나쁜 날씨 속에서 남긴 것이 최고의 명작 ‘빗방울전주곡’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