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정(맨끝 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나는 욕을 먹어야 한다.”
최인정(28·계룡시청)은 21일(한국시간)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이하 AG)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이 말을 반복했다. 인터뷰 내내 자책만 했다. 쑨이원(중국)과 준결승전에서 10-7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패한데 따른 아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어떡합니까. 단체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죠”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 기회가 주어졌다. 24일 벌어진 단체전에서 결승까지 올랐다. 상대는 중국이었고, 최인정은 마지막 주자였다. 점수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피스트에 오른 선수. 압박의 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23-24. 한 점차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최인정이 피스트에 올랐다. 상대는 다름아닌 쑨이원. 개인전의 리턴매치였다. 최후에 남는 자가 이긴다. ‘라스트맨 스탠딩’이 필요했다.
잘 싸웠다. 28-28 동점으로 연장에 돌입했고, 18초만에 최인정의 공격이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비디오판독 끝에 무효가 됐다.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현장에선 최인정의 무릎이 피스트에 닿은 것으로 봤다. 그러나 심판진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경기가 재개됐고, 쑨이원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28-29 패배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인정은 “분명히 먼저 찌르고 나서 피스트에 몸이 닿았다고 생각했는데…”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인정은 물론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강영미(33·광주서구청)를 비롯해 신아람(32·계룡시청), 이혜인(23·강원도청) 등 동료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특히 최인정의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2012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4인천아시안게임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은메달, 이번 대회 개인전 동메달까지. 2013년 동아시아대회 단체전 금메달을 제외하면, 종합국제대회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보지 못한 아쉬움을 풀고 싶었을 터다. 28-28에서 골든포인트를 획득했다고 확신했기에, 그 아쉬움은 더 컸다. “심판이 공격 성공이 아니라고 했을 때 마음을 잡았어야 했는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픔이 있다. 리우올림픽 단체전 8강에서 에스토니아를 상대로 연장 끝에 패했을 때 최인정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마지막 주자로 나서 결승점을 내준 탓이다. 당시 최인정은 에페대표팀 막내였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었다. 이번 AG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겠노라고 다짐했다. 실제로 최인정은 몇 뼘 더 성장해 있었다. 경기 운영능력과 상대 빈틈을 공략하는 기술, 평정심을 찾는 것까지 모든 면에서 그랬다. 그가 피스트에 오르면, 안정감이 느껴졌다.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좋았다.
이번에도 ‘결과적으로’ 최인정이 결승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리우올림픽 당시 그를 비난했던 이들의 시선은 180도 달라졌다. “잘 싸웠다”는 응원이 쇄도했다. 현장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자원봉사자는 최인정을 가리키며 “저 선수가 정말 인상적”이라고 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