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오 씨 제공
‘마라톤 마니아’ 스테파니 오 씨(59·한국명 오영주)는 2019년 4월 열리는 제123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 보스턴마라톤 완주로 환갑을 힘차게 맞이하겠다는 각오다. 성별 나이별 기준 기록이 있는 보스턴마라톤은 아무나 참가할 수 없어 마스터스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그는 올 3월 열린 2018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4시간5분대를 뛰어 ‘4시간10분 이내’란 보스턴마라톤 성별 연령별 기준기록도 이미 통과했다.
“생각 만해도 가슴이 뛰어요. 환갑에 꿈의 무대를 달릴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요. 전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
스테파니 오 씨 제공
스테파니는 아버지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스포츠를 접하고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영 평영 국가대표로 활약할 정도로 두각도 나타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스포츠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게 됐다. 중·고등학교 때는 테니스를, 대학 때는 스쿼시와 골프를 즐겼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다닌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푸나우 스쿨을 다녔고 보스턴 터프츠(Tufts)대에서 학사, 하버드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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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오 씨 제공
“축구를 한 아버지. 농구를 한 어머니 밑에서 운동이란 유전자(DNA)를 물려받았다면 미국이란 스포츠천국 같은 환경에서 스포츠를 잘 즐길 수 있었다.”
“미국에선 어린아이들의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대부분 축구를 시작했다. 난 끌리지 않아서 안했지만 남자들의 경우도 축구를 시작한 뒤 미식축구와 야구, 농구 등으로 갔다. 미국에서 억척스러운 엄마들을 ‘사커맘(Soccer Mom)’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축구를 많이 했다.”
스테파니가 대학에서 스쿼시와 골프를 한 이유는 대학 1,2학년 때 스포츠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이후 대학원은 물론 성인이 돼서도 스쿼시와 골프를 계속 즐기고 있다.
스테파니는 사회생활을 하던 30대 중반 달리기에 입문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렸는데 3km, 5km, 10km를 달려도 전혀 힘들지 않았단다. “초등학교 때 수영을 해서 인지 폐활량이 좋았던 것 같았다”는 게 스테파니의 설명. 그러던 중 41세가 되던 2000년 친구들에게 “난 내년에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할 거야”라고 선언했다. 당시 보스턴에 살고 있었고 매년 열리는 보스턴마라톤에 열광하는 사람들 틈에 끼고 싶었다.
스테파니 오 씨 제공
사실 스테파니는 기준기록이 없어 보스턴마라톤을 달릴 수 없었다. 당시에도 성별 연령별 기록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대회조직위에서 굳이 등록을 하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을 막지는 않았다. 그래서 4시간35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전적으로 개인기록이지 공식기록은 아니다.
“완주를 하고 왔는데 난리가 났다. 한국의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 때의 감격을 더 잊을 수 없었다.”
당시 이봉주는 한국선수론 51년 만에 세계 최고 전통의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했다. 1950년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휩쓴 지 꼭 51년만의 일. 당시 세계 언론들은 ‘이봉주가 케냐군단의 11연패를 저지했다’며 대서특필했다. 스테파니도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 마라톤에 매진했다. 보스턴마라톤 기준기록을 깨겠다는 일념으로 달렸다. 2003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개인 최고기록인 3시간46분대를 달렸다. 당연히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할 수 있는 기준기록을 통과했다. 하지만 대회 출전 등록까지 마치고도 부상으로 달리지 못했다. 레이스 열리는 날 현장에서 가서 사진만 찍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스테파니 오 씨 제공
한동안 바쁘게 사느라 보스턴마라톤은 생각도 못했다. 워싱턴마라톤 시카고마라톤, 서울국제마라톤 등에는 출전했지만 보스턴마라톤에 다시 출전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8년 전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한국으로 완전히 들어왔고 국내에서 외국인들 달리기 모임인 ‘서울플라이어스’에 나가 달리면서 다시 보스턴마라톤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2016년 기준기록을 세웠는데 일이 바빠 가지 못했다. 그 꿈을 내년에야 이루게 된 것이다.
스테파니는 일이나 약속 등이 없으면 평소 언제든 달릴 수 있는 복장을 하고 다닌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바로 달리기 시작한다.
“엊그제 섭씨 37도일 때 오후 1시에 한강변을 달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내가 즐거운데 무슨 상관인가.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몸이 찌뿌드드하고 이상하다. 땀을 쫙 빼고 시원하게 샤워한 뒤 느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매주 5~6회 달린다. 대회를 앞두고는 주당 80km 이상, 평상시에는 주당 50~60km를 달린다. 서울 남산과 한강변이 달리는 주 코스. “개인적으로 남산이 가장 달리기 좋은 코스다. 1년 내내 너무 아름답다. 최소 주 2회는 남산을 달린다.”
스테피나 오 씨 제공. 서울 플라이어스에서 함께 달리는 모습.
그는 혼자도 달리지만 서울 플라이어스 회원들하고도 달린다. 200명이 모이는 서울 플라이어스는 화요일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달린다. 스테파니는 토요일 날 함께 달린다. “혼자 달리며 다양한 생각과 명상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달리는 사람들은 다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 분위기가 좋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는 않는다. 피곤하면 달리지 않는다. 풀코스는 1년에 2회 이상 출전하지 않는다. 주로 하프코스를 달린다. 마라톤에 빠진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풀코스 완주는 20여 차례에 불과한 이유다.
“풀코스를 완주한 뒤 울트라마라톤과 산과 들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도전 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무릎 등에도 무리할 것 같아 시작도 하지 안했다. 오래오래 달리려면 몸을 아껴야 한다.”
스테파니는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아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살핀다. 웨이트트레이닝과 필라테스도 병행한다. 오래 달리려면 부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골다공증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5년에 한번 씩 와서 검사 받아도 될 정도로 뼈가 튼튼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달리니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다.”
22일 서울 동부이촌동 한 카페
달리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정신이 맑아진다. “솔직히 내일 모레 내 나이가 60세이지만 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나이보다 훨씬 젊다고 느끼고 그렇게 살고 있다. 달리면서 내 몸에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운동이 뇌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스테파니는 일 때문에 밤을 꼬박 새도 피곤하지가 않다. 아직 10시간 정도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다. 달리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의 학생들을 미국 유명 기숙학교와 대학교에 보내는 유학원은 운영하는 그는 미국과 중국 등을 자주 오가는데 해외 출장지에서도 매일 달린다. 그래야 일도 잘 된다. 달려야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다. 달리기가 스테파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활력소인 셈이다.
“이런 거 있잖아요. 달리면 건강에 좋다 그런 게 아니라 안 달리면 행복하지 않다는 거…. 달릴 때 가장 행복하고 기쁘다. 마음 같아선 80세를 넘어 죽기 전까지는 달리고 싶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