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고집 ‘불통 리더십’… 보수궤멸 전에 국정동력 잃을 판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힌 참모진과 기득권 노조에 국가권력 포위됐나 “잘못한 일 말하겠다” 취임사 잊었나
김순덕 논설주간
이보다 불편한 것은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 축사였다. 대통령은 “요즘 고용에 대한 걱정의 소리가 많다”면서도 ‘그러나’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고 ‘하지만’ 청년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 등이 해결되지 못했다며 “이것이 혁신성장과 함께 포용적 성장을 위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20일만 해도 고용 상황 악화에 마음이 무겁다던 대통령이 민심과 불통하는 모습으로 또 바뀐 거다. 자칫하면 보수가 궤멸되기 전에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을 판이다.
어제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통령의 축사와 비슷한 내용을 20여 분간 설명했다. 핵심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것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식으로 말하면 “그럼 과거 대기업·수출중심 성장정책으로 돌아가자는 거냐”다.
어쩌면 문 대통령도 장하성의 서생적 오류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하성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상징이자 진보학자의 아이콘이다. 내치자니 정부의 진보성을 포기하는 것이 되고, 안고 가자니 국민을 버리는 것이 되어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계륵(鷄肋)이라고 상상하면, 대통령이 아무것도 모르거나 속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청와대’에서 일했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80년대 철 지난 이념 가진 사람들, 생산성 이상의 몫을 가져가려는 기득권 법외노조에 포획된 국가권력’이라고 꼬집은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불복종 운동을 펴자”고 주장했다. 6월 1회 전자정부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던 그가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이 종국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다는 한 달 전 대통령 발언에 격분해 “사람이, 정권이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관찰하지 못하고 성찰하지 못하고 고집부리면 어떤 악의가 있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까지 한 것이다. 한 가지 더 가정한다면 종교처럼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1896년 ‘사회주의의 심리학’을 쓴 귀스타브 르봉은 사회주의를 믿음으로 보면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약속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역사는 사회주의 같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대결인데 민중계급에 “일은 더 적게 하고, 쾌락은 더 많이 즐기라”고 설파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이상이라는 거다.
단, 자신의 책임 아래 행동하고 독창력을 발휘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민족이 문명의 첨단을 지킬 수 있지만 사소한 행동까지 국가의 보호 또는 통제를 받는 민족은 ‘거대한 밥통’으로 전락한다는 그의 지적은 섬뜩하다. 일본은 6월 ‘일하는 방식 개혁’에서 고소득 일부 전문직종을 노동시간 규제에서 제외했다. 우리는 일을 더하고 싶은 사람도 국가가 막겠다고 공무원을 늘리는 판이니 이러고도 국가주의 아니면 뭔가 싶다.
국민은 장하성 같은 참모진에게 포획당할 것까지 예상하고 문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는 않았다.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은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얼굴로 국민 앞에 다짐했다. 민심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이제 문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