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뉴욕 특파원
브렌던은 지난달 집 앞에 레모네이드 가판을 차렸다. 75센트(약 840원)짜리 레모네이드를 팔아 꼭 가고 싶었던 디즈니랜드 여행비를 제 손으로 벌 생각이었다. 5세 때부터 매년 지역 축제에 나가 레모네이드를 판 경험을 살려 올해는 1달러짜리 생수와 빙수까지 메뉴에 추가했다. 그런데 이 충만한 사업가 정신 때문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근처를 지나던 주 위생국 검사관은 주변 노점상인들의 민원을 이유로 브렌던의 ‘무허가’ 레모네이드 판매를 중단시켰다. 브렌던은 어린 나이에 정부 규제의 혹독함을 체험하고 가판을 접었다. 아버지 숀이 이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미국 전역에서 “국가가 아이들 레모네이드 판매까지 간섭하고 규제해서 되겠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엘리스 스테파니크 연방 하원의원은 “‘가혹한 규제’의 대표적 사례”라고 개탄했다.
브렌던은 어른들의 호들갑 때문에 유명세를 탔지만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18일(현지 시간) 새러토가 카운티 축제에서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열어 946달러를 번 브렌던은 그 돈을 꼭 가고 싶었던 디즈니랜드 여행 대신 더 값진 데 쓰기로 했다. 성장 장애로 다리가 휘는 병을 앓고 있는 12세 매디 무어의 치료비에 보탰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렌던은 내년에 다시 사업에 도전할 것”이라며 “이번에는 레모네이드만 팔 계획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국가가 시민 사생활에 깊숙이 개입해 규제하는 ‘보모국가(Nanny state)’ 논쟁을 촉발시킨 브렌던 사례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영국 유럽 등 사회복지 선진국일수록 논란이 뜨겁다. ‘규제 강국’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1만3704건의 법안 중 2391건이 규제 법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에서 제정되는 법률의 약 90%가 의원발의 법안인데도 모범규제 의제는 국회에서 제한적으로 다뤄지거나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원 입법도 정부 입법처럼 엄격한 규제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늘 나오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 소상공인의 매출 대비 규제 비용 비율은 11.2%로, 중견기업의 약 5배다. 정치권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의지가 있다면 대기업, 카드 수수료, 임대료 등 남 탓만 할 게 아니다. 당장이라도 직접 할 수 있는 의원 입법 규제 심사 논의부터 시작하는 게 도리다. 대통령은 규제 개혁을 외치고, 국회는 열심히 규제를 만들어 내는 보모국가의 ‘정치 코미디’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