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 골든타임을 지켜라]8대 주력산업 점검<6>조선
아직 거제는 ‘중국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 조선업계는 2007년에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연간 수주량을 추월당했다.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한 중국의 수주 공세는 무서웠다. 한 조선소 관계자는 “중국은 배를 금형에서 찍어 내듯 만드는 것 같았다. 기세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2007년 이후 한국의 연간 수주 점유율은 2011년과 2015년을 제외하고 항상 중국에 밀렸다. 조선소 일감이 줄자 거제, 울산, 전북 군산 등 조선소가 있는 지역 경제도 함께 침체에 빠졌다.
○ 중국의 쌍끌이 무기… 값싼 노동력과 정부 지원
중국 정부는 2000년대부터 조선 세계 1위를 목표로 조선업을 육성했다. 정부가 나서서 해외 선주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주며 중국 조선 기업에 발주할 것을 독려했다. 유동성이 부족해 건조에 차질이 생기는 조선소엔 중국 정부가 적기에 금융 지원을 해준다.
중국 내 발주 물량도 많다. 중국 수주 물량의 30∼40%는 자국 업체가 주문한 것이다. 최근엔 중국 정부가 나서서 국영 해운사들에 조기 폐선을 유도하며 “최신 선박으로 교체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수주량을 꾸준히 늘리려는 시도다.
그 결과 중국은 벌크선과 중소형 컨테이너선 분야에서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 본보가 클라크슨 리서치를 통해 최근 10년 동안(2008∼2018년 8월) 벌크선 수주량을 뽑아봤더니 중국은 총 2972척을 수주한 반면 한국은 171척에 그쳤다.
또 하나. ‘조선업 불황’이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세계 선박 발주량은 2007년 9200만 CGT(표준화물 환산 톤수)로 정점을 찍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09년 발주량은 2007년보다 81%가 감소한 1700만 CGT였다. 현재 세계 선박 발주량은 2011∼2015년 평균 발주량인 4000만 CGT의 약 60%에 불과한 상황이다.
○ “미래형 선박 통해 기술 격차 벌려야”
한국과 중국의 조선소 모두에 발주를 해본 경험이 있는 유럽 선사의 임원 A 씨는 최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은 기술력, 중국은 싼 가격이 매력적이다”며 “한국 조선사는 납기일을 지키면서도 선박 품질의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한국 조선업의 기술 경쟁력은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1만 TEU(1TEU는 길이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한국은 최근 10년간 248척을 수주한 반면 중국은 115척을 수주했다. LNG 운반선(LNG 관련 선박 모두 포함)은 한국이 240척을 수주했지만 중국은 39척에 그쳤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1∼6월) 한국 조선업체들의 누적 수주량은 3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탈환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고언(苦言)도 나온다. 한 조선업계 전문가는 “난립한 중소 조선사 중 좀비기업들을 솎아내고, 중·대규모 조선사 중에서도 효율성 낮은 업체를 구조조정해야 한다”며 “중국은 2013년부터 ‘될 업체만 키운다’는 기조로 하루 지나면 조선소 한 곳을 없앨 정도로 구조조정해 지금은 경쟁력 없는 조선소 90%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거제=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