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원칙에 집착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세상을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스케줄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처음 정해 놓은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난리가 나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아이들을 ‘고집이 세다, 성격이 까탈스럽다’고 오해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는 더 많은 아이들은 ‘불안’ 때문에 그런다. 그런 상황이 되면 뭔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져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주변을 과잉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책상 위에 있던 크레파스가 유치원에 갔다 와서도 그 모양 그대로 있어야 한다. 만약 누군가 그 크레파스를 정리해 놓으면 그대로 해 놓으라며 소리 지르며 울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엄마와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 매번 자기가 현관문 번호키를 눌렀었는데, 엄마가 깜박 잊고 한 번이라도 누르면 난리를 치기도 한다. 모두 불안해서 하는 행동이다.
불안한 아이들은 자기의 틀을 지나치게 고수하고 원칙이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못 견딘다. 저항하고 거부한다. 이런 아이들은 이 틀을 벗어나도록 천천히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 틀에서 벗어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부모와 아이가 대립의 위치에 서게 되어 아이의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마음이 불편해지면 아이는 더더욱 그 틀을 단단히 고수한다. 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 틀에서 벗어나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스스로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틀을 바꿨는데 크게 손해 본 것 없이 괜찮았던 경험, 원래 정한 대로가 아니라 다른 방법도 취할 수 있다는 경험,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그것이 일상의 안전을 깨지 않는다는 경험…. 동우 같은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늘려주어야 한다. 아이의 불안을 인정해주고, 약간씩 틀에서 벗어난 상황을 만들어 아이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대할 때는 다음의 세 가지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노력한다. 첫 번째는 틀을 바꾼 것이 의도적이 아니라는 것과 너를 불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세상에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틀을 바꿔보는 경험을 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아무리 아이가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래도 가능하면 너에게 미리 얘기를 해주마. 그렇게 하도록 노력할게”라는 말을 꼭 해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