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신 사회부 기자
긴팔 잠바를 입고 폭염 현장을 찾거나 회의하는 모습은 사진들로 대중에 전해졌다. 사진을 본 몇몇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폭염에 긴팔 잠바라니, 분명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올 때마다 현장 방문 모습에는 ‘이 더위에 뭐하는 건가’라는 반응이, 회의 사진에는 ‘도대체 에어컨을 얼마나 세게 틀길래’란 반응이 나왔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말 긴팔 잠바를 입고 폭염 현장을 찾은 한 기초자치단체장은 ‘덥지 않냐’는 질문에 웃기만 할 뿐이었다.
국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민방위 잠바를 입는 것은 의무일까. 올해 폭염은 재난으로 다뤄졌기에 잠바를 꼭 입어야 했던 걸까. 행정 규칙인 ‘민방위 복제 운용 규정’에 나와 있다. 여기에는 재난 현장을 찾거나 민방위 훈련과 교육 등을 할 때 ‘착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바꿔 말해 꼭 입어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공무원들도 대부분 민방위 잠바를 입는 걸 의무로 알고 있지는 않았다. 공무원 A 씨는 “일종의 관례인 것 같다. 공무원 생활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고 말했다.
매년 여름이면 공공기관에서 냉방 설정 온도를 28도로 지키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을 다룬 기사가 보도된다. 대다수 반응은 ‘괜히 업무효율 떨어뜨리지 말고 시원하게 해서 일이나 잘해라’이다. 누군가의 의심처럼 폭염 대책회의 때 잠바를 입는 이유가 몰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결국 많은 공무원들은 현실과 안 맞는 냉방 규정 속에서 굳이 잠바까지 입어가며 폭염 대책을 짜낸다는 얘기다. 대책 이전에 짜증부터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 지자체가 밝힌 재난 상황에서 민방위 잠바를 입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재난 대응 인력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고 재난에 대한 경계심을 스스로 갖기 위해서다. 폭염 속 민방위 잠바를 입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넘쳐났던 올여름, 한 자치구가 보내온 사진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반팔 티셔츠에 봉사활동 때 입는 조끼를 입고 현장을 돌고 회의를 했다. 그들의 재난 대응 자세가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다. 폭염 속 민방위 잠바가 주는 끈적끈적함이 옷 한 벌에 국한된 느낌은 아니기에 더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한우신 사회부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