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진 소설가
지진을 예로 들어보자. 외국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해 사람이 여럿 죽고 공장도 크게 파괴됐다면 보통은 참사로 인식하고 애도의 목소리를 건넨다. 하지만 증권사 보고서는 다르다. 만약 그 지역 공장의 생산 차질로 우리나라 기업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전망되면 호재라고 표현한다. 인력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특정 산업이나 기업이 인력을 대거 감축하는 상황에서도 증권사 보고서는 다음 질문에 주목한다. 그를 통해 실적이 개선될 것인가? 주가가 상승할 것인가? 대답이 긍정적이면 구조조정 역시 호재다.
누군가는 분노를 터뜨릴 테다. 증권업계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그들은 자기 직무에 충실한 것뿐이다. 증권업의 본질은 자본 유통, 자산 관리 등이기에 그런 관점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도리어 직업윤리에 부합한다. 사회의 통념을 거스를지라도 그렇게 말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층적이다. 누군가는 살인, 절대악으로 바라보는 반면 누군가는 성장을 위한 재편 과정으로 바라본다. 사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큰 틀에서 보면 합리적인 절차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죽도록 괴로운 시간이니까. 내 아버지 역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에 20년 넘게 재직한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자영업자로 탈바꿈했다. 10대였던 우리 형제에게 내색은 않았지만 힘든 시간을 거쳤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회사는? 그를 발판으로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다. 구조조정은 옳은 판단이었다.
구조조정은 합리 또는 공감의 탈을 쓰고 반대 견해를 적대시하는 태도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성장을 위해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그러나 당사자는 매우 고통스러움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나의 구조조정은 살인이고 남의 구조조정은 정의일 수 없단 뜻이다. 합리의 틀 안에서 변화와 성장을 꾀하되 개인의 노동권을 최대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진보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고 재취업을 위한 교육 역시 부실하다. 한데 이를 확충하자고 주장하면 세금을 축낸다며 반발하는 이가 꽤 된다. 웃긴 건 평소 ‘유연한 노동시장’을 지향하는 부류에도 그리 말하는 이가 많다는 점이다. 아무리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하나 정도가 심하지 않나 싶다.
홍형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