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소득 여아들에게 무료 생리대를 지원하는 소셜벤처기업 안지혜 대표
광고에서는 ‘마법에 걸리는 날’이라고 포장했지만 저소득층 여자 아이들에게 ‘그날’은 두려움 그 자체다. 2년 전 ‘깔창 생리대’ 이슈가 터지기 전까지 돈이 없어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27일 서울 강남구 개포디지털혁신파크에서 만난 ‘이지앤모어’의 안지혜(32·여) 대표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2016년 3월 설립된 이지앤모어는 생리대 전문 쇼핑몰로 저소득층 여자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생리대를 지원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취약계층에게 일자리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조직)이다. 지난해 일회용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용품으로 주목받은 해외 생리컵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오면서 널리 알려졌다.
안 대표는 3년 전까지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그의 인생은 단골식당을 찾다 바뀌었다. 아시아 요리 전문점인 단골 식당은 베트남, 태국 출신 이주여성이 직접 요리하는 곳이었다. “그 식당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오요리아시아’가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사회적 기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죠. 때마침 사람을 모집한다길래 덜컥 지원했습니다.”
오요리아시아에서 기획업무를 맡은 그의 연봉은 전 직장보다 반으로 줄었지만 얻은 건 더 많았다. 낯선 나라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식당에서 일을 하며 자립하는 과정을 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1주일 뒤 창업을 결심했다. “비싼 생리대는 모든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 문제잖아요. 사회적 기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신생 기업이 수익을 내는 데 모든 인력과 역량을 집중해도 벅찼을 텐데 왜 사회적 기업이었을까. “저소득층 여자 아이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게 창업의 목표였어요.”
저소득 여아들에게 무료 생리대를 지원하는 소셜벤처기업 안지혜 대표
안 대표가 구상한 사업 모델은 생리대와 마스크팩 등 여성 용품이 들어있는 상자 하나를 사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자가 기부되는 방식이었다. 2016년 4월 270만 원을 목표로 크라우딩 펀딩에 도전했다. 여성은 물론 남성들까지 선뜻 지갑을 열었다. 1개월 만에 목표액을 채웠고, 150명의 아이들에게 상자를 기부했다. 며칠 뒤 깔창 생리대 이슈에 힘입어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첫 펀딩이 성공하고 7개월 뒤 기부 방식을 바꾸었다. 펀딩 방식으로는 매달 필요한 생리대를 지속적으로 기부하기 어렵다고 판단에서다.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입할 때마다 자동으로 기부 포인트가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아이들은 이 포인트로 월 최대 1만2000원 어치의 상품을 구입한다.
이지앤모어가 돕고 있는 여자 아이들은 현재 560명으로 늘었다. 사회공헌단체와 지역아동단체들이 소개해준 아이들이다. 이들은 생리대 살 형편이 안 되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의 무상 생리대 지원 사업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기부한 생리대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억5000만 원이 넘는다. 이지앤모어는 아이들에게 생리대 사용법, 교체주기를 알려주기 위한 출장 성교육도 하고 있다. “조손가정이거나 부모와 따로 사는 아이들이라 성교육을 받거나 물어볼 데가 없거든요.”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