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허스트 ‘그릇을 든 악마’(2017년).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이란 제목을 단 전시는 보물선 아피스토스호 이야기를 다뤘다. 이 배는 약 2000년 전 인도양에서 침몰했던 시프 아모탄 2세의 보물선으로 2008년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됐다. 허스트의 투자로 발굴 작업이 이뤄졌고,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보물과 예술품, 그리고 전시를 위해 제작된 조각 189점을 전시에 선보였다. 지난 10년간의 발굴 과정을 기록한 9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고, 전시 작품 옆에는 해당 작품이 발굴되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함께 배치됐다. 일종의 증빙 자료였다. 그런데 이 모두가 가짜다. 악동 예술가 허스트의 머릿속에서 나온 꾸며낸 이야기다. ‘시프 아모탄(Cif Amotan)’이란 이름도 ‘나는 허구다(I am fiction)’를 철자 순서를 바꿔놓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산호초나 조개껍데기로 장식된 진짜 같은 해저 유물들은 전시 3년 전에 완성한 후 바닷속에 2년간 수장했다가 건져낸 것들이다. 그러니 가짜인 줄 알면서도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전시의 압권은 ‘그릇을 든 악마’였다. 전시품 중 가장 큰 규모로 무거운 청동조각 같지만 실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그릇에 인간의 피를 모으는 뱀의 혀를 가진 고대 악마를 형상화했다지만 이 또한 허구다.
1000여 명의 인력과 73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전시는 마치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그렇다면 진짜가 없는 허스트의 전시는 사기였을까? 물론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확천금의 기회, 보물선의 욕망과 판타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진짜 전시였으니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