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준결승 운명의 두 사령탑
한국 김학범 감독(오른쪽)과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29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경기 남자 축구 준결승을 앞두고 서로 포옹하고 있다. 보고르=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경기가 끝난 후 애국가와 베트남 국가가 울려 퍼졌을 때의 심경을 묻자 박 감독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베트남 감독이 한국팀에 대해 특별히 이야기할 건 없고 김학범 감독과 선수들에게 축하드린다”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조별리그부터 5경기 무실점 행진을 이어왔던 베트남은 이날 한국의 빠른 압박에 고전했다. 박 감독은 “오늘 졌지만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결승전을 위한 길은 비록 멈췄지만 3, 4위전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 상대가 한국이라는 점에 경기 초반에 위축된 플레이를 했고 초반에 빨리 실점한 게 큰 스코어로 진 원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날 경기 후반 전열을 가다듬으며 추격골을 터뜨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너무 긴장돼 있는 거 같아서 후반 들어 자신 있게 하라고 주문하고 포백으로 수비를 바꿨다. 르엉쑤언쯔엉에게 손흥민을 마크하게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힘들고 어려운 길을 우리가 택해서 왔다. 지금 차례로 상대를 격파해서 올라가고 있지만 완전 다 지친 상황이다”며 “어려운 상대들만 만나다 보니 선수들이 탈진까지 갔다고 본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정신력이다. 마지막까지 그 정신력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비록 졌지만 베트남을 사상 최초로 이 대회 준결승에 올려놓으며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로 썼다. 그는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이 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했고 국민 영웅으로 거듭났다. 김 감독은 가시밭길을 헤쳐 왔지만 마침내 결승에 진출했고 다음 달 1일 한국의 대회 2연속 우승이자 통산 5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보고르=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