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백기완씨가 낸 헌소 등 각하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은 허용될 수 없다고 30일 결정했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헌법재판소법 조항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날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 사건의 첫 번째 피고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86)이 ‘긴급조치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낸 사건 등 헌법소원 54건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나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을 심리 없이 종결하는 것이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은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국가의 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건 긴급조치가 합헌이어서가 아니라 위헌임에도 배상을 할 책임이 없다고 본 ‘해석’이므로 헌법소원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6년 4월 헌재는 ‘위헌 결정이 나온 법령을 그대로 적용한 법원의 판결은 헌법소원 대상이지만 나머지는 헌법소원 대상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헌재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사안을 뒤집지 않았다면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다만 김이수 안창호 등 재판관 2명은 “대법원 판결들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취소돼야 한다.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이 명백한 것을 알면서 입법을 한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지 않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백 소장은 1974년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2009년 재심을 청구해 2013년 무죄를 확정받았고, 이후 국가 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2015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