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회견장의 금메달리스트들은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대 뒤에서 조용히 칼을 갈고 있는 선수는 따로 있었다. 남자 리커브 대표팀 막내 이우석(21·상무)이다.
이우석은 양궁 남자 대표 선수들 중 유일하게 개인전, 단체전, 혼성전 등 3종목에 모두 출전했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대표 선발전을 통과했고, 선발전 1위만 누릴 수 있는 전 종목 출전의 영예도 얻었다.
어린 나이지만 그는 벌써 여러 차례 아픔을 겪었다. 2014 인천 대회 때는 4명을 뽑는 대표 선발전에서 5위를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3명을 선발했는데 그는 4위였다. 천신만고 끝에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노렸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팬들은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한국 양궁의 에이스는 항상 시련을 바탕으로 최고의 궁사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 2관왕에 오른 뒤 줄곧 여자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맏언니’ 장혜진(31·LH)은 이우석과 같은 길을 걸었다. 20대 중반까지 그는 항상 한 순위 차이로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곤 했다. 그 시련을 참고 견뎌 20대 후반이 돼서야 에이스로 꽃을 피웠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남자 개인전 첫 금메달을 딴 맏형 오진혁(37·현대제철)은 1999년 처음 대표팀에 선발된 뒤 다시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10년을 버텨야 했다.
남자 에이스 김우진은 4년 전 인천 대회 때 4명의 국가대표에는 선발됐으나 출전 선수(3명) 안에는 들지 못해 내내 ‘관중’으로 동료 선수들을 응원해야 했다.
세계 양궁은 날이 갈수록 평준화되고 있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각 나라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기술적으로는 이미 큰 차이가 없다. 한국 양궁의 남아있는 무기는 절실함이다. 김우진은 “한국 양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말 절실해야 한다. 오늘의 아픔이 미래의 에이스 이우석을 위한 토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게 그렇게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