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2> 노인 친화적 교통 인프라 부족
○ 왕년의 ‘베스트 드라이버’도 쩔쩔 매
인지기능 검사는 짧은 시간 안에 교통표지판을 구분해 내거나 경로나 방향을 기억하는 정도를 측정해 간접적으로 운전이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는 검사다. 최 씨는 익숙하지 않은 기기와 짧은 답변 시간을 탓하며 검사 내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 씨의 최종 점수는 54점. ‘낙제점’인 42점을 간신히 넘겼다.
검사를 진행한 도로교통공단 정월영 교수는 “점수가 낮다고 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거나 운전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등급이 낮으면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여서 운전대를 잡지 않기를 권고한다”고 말했다.
도로 운전 상황을 재현한 ‘시뮬레이터’ 검사에서도 최 씨는 고전했다. 특히 차로 가운데를 달리거나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결국 30대 기자보다 2배 넘는 급가속, 급정지 횟수를 기록했다. 최 씨는 “세상에서 운전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시력이 떨어져 운전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노인 친화적 교통 인프라 부족
올해 6월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94만5737명으로 6년 전인 2012년에 비해 약 130만 명이 늘었다. 고령 운전자 비율은 9.2%로, 전체 운전자 10명 중 1명이 노인이다.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2012년 1만5190건에서 지난해 2만6713건으로 75.8%나 급증했다.
교통과학연구원 최은진 연구원은 “국내 도로는 직진 차로가 갑자기 좌회전 전용 차로로 바뀌는 등 도로 구조가 복잡해 고령자에게 몇 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 운전면허 반납 시 인센티브 도입 필요
전문가들은 지난해 이미 고령사회(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 차지)에 진입한 데 이어 7년 뒤인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이 20% 이상 차지)에 들어서는 만큼 고령 운전자를 위한 교통 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2010년 교통표지판 글자 사이 여백을 넓혀 표지판 판독 거리를 10% 향상시켰다.
국내 교통표지판의 경우 방향을 나타내는 글자(지점명) 크기가 22cm로, 도로명(33cm)에 비해 작다. 정부는 도로명보다 운전자에게 더 유용한 정보인 지점명을 30cm 안팎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속도로처럼 어두운 곳에 있는 표지판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하면 야간 운전을 힘들어하는 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고령 운전자들이 운전 능력이 떨어지면 스스로 운전대를 놓게 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2015년부터 운전면허 자진 취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3700여 명이 스스로 면허를 반납했다. 특히 부산시는 올해 7월부터 면허를 자진 반납한 고령 운전자에게 교통비 지원과 식당 할인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7월에만 부산에서 1509명이 면허를 반납했다.
정월영 교수는 “올해부터 고령 운전자가 차량에 부착할 수 있도록 ‘실버 마크’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며 “초보 운전자를 배려하듯이 고령 운전자를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