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뛰는 서울 집값]<下> 서울공화국 부추기는 ‘집값 블랙홀’
서울 집값 상승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한 국가균형발전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서울 부동산의 구심력이 지방의 인적·물적 자본을 끌어당기고 있어서다. 이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지방 이전 공기업 직원들이다. 2004년 제정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까지 한국전력공사, 국민연금공단 등 공공기관 153곳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경북 김천혁신도시로 이전한 한 공공기관 직원은 서울에서 고속철도(KTX)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는 5일 기자에게 “지금 사는 서울 중구 아파트는 4년간 30%가량 올랐는데 회사 근처 아파트는 5%도 안 오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집을 팔고 내려오겠느냐”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의 여유 있는 사람들까지 서울 아파트 구매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M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지방 손님 중에 현금이 얼마 있는데 이걸로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살 수 있냐고 다짜고짜 묻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의 아파트 매수자 중 비(非)서울 거주자는 20.0%로 집계됐다. 이 비중은 3년 연속 증가세다.
이런 집중 현상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수요를 늘리고, 이 수요가 서울 집값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서울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개발계획들은 서울의 일자리를 늘리고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 중인 굵직한 개발계획만 봐도 영동대로 지하 통합 개발,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잠실종합운동장 마이스(MICE) 단지 개발 등이 있다.
서울 집값이 뛰면서 서울시의 재산세 수입도 오르고 있다. 재정 여건이 좋아지니 주거환경 개선에 쓸 수 있는 자금 여력도 풍부하다. 지난해 서울시가 거둔 재산세(부동산 외 재산 일부 포함)는 2조2882억 원으로 4년 전인 2013년보다 25.8% 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19일 1조 원 규모의 특별회계를 편성해 강북 투자에 쓰겠다고 밝힌 것도 다른 시도에서는 흉내도 내기 어렵다. 집값 상승→지방세수 증가→서울시 인프라 구축 여력 증가로 이어져 서울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셈이다.
정부는 서울 집값 대책으로 수도권 광역교통망 확충을 택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서울과 수도권 주변으로 많은 교통 정책을 펴고 있어 서울 주변에 살더라도 주거 여건이 많이 개선될 테니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부 정책에 함께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방안 역시 주변 도시의 주거생활 여건을 개선하기보다는 서울 출퇴근만 쉽게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