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도쿄 특파원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경제재생상은 현장에 있는 기자들에게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405명 중 참석률이 85%가 넘는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이 중 의원 본인이 참석한 경우도 230명이나 됐다. 이들은 모두 아베 총리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필승을 다짐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20일 열리지만 아베 총리는 이미 승기를 잡은 듯한 분위기다. 현 정권의 ‘넘버 2’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6년간 자민당의 성과는 아베 총리 그 자체”라며 “이를 바꾸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아베 총리를 치켜세우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서약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베 총재의 3선을 향해 전력을 다해 응원하는 것과 함께 반드시 아베 후보를 지지할 것을 서약합니다.” 옆에는 날짜와 의원 이름을 적도록 했다.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뜻이 담겼다. 호소다파는 이날 서약서를 모아 선거대책본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약서의 존재는 출범식이 열리기 이틀 전인 1일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일본 내 보수 성향의 신문사인 요미우리조차 “서약서를 만들어 서명하도록 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출범식이 열린 3일 TV아사히에서는 앵커가 서약서를 직접 갖고 나와 출연자와 함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일본 누리꾼들은 맹비난했다. “지지를 강요하고 있다”부터 “민주주의에 먹칠을 하고 있다” 등. 공개적으로 지지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야쿠자(일본의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있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한 일본인 정치 칼럼니스트에게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이를 ‘문서 촌극’이라며 “일본 정치사에서도 전대미문의 일이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선거 이후 후환이 두려워 주변 지지자들이 알아서 과한 충성심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비난하는 나도 후환이 두려우니 내 이름은 기사에 쓰지 말아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그 대신 “힘들 때 하나가 된다. 이것이 우리 당의 힘이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이런 당당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가만히 있어도 서약서에 서명하는,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