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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이분법을 넘어 사랑과 관용의 문학세계 구축

입력 | 2018-09-06 03:00:00

[제8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5·끝>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




살만 루슈디의 문학세계에 대해 김성곤 심사위원은 “분노와 증오를 넘어 관용과 포용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라고 평했다. ⓒTimothy Greenfield-Sanders

《인도가 독립하던 해에 이슬람교도로 태어난 살만 루슈디. 어린 시절 인도 파키스탄의 종교분쟁과 나라의 분리를 겪은 그의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증오와 분노, 폭력을 넘어서는 사랑과 관용, 포용’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루슈디는 그 자신이 증오와 분노, 폭력의 대상이 됐다. 1988년 출간한 ‘악마의 시’가 무함마드와 꾸란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에 의해 이단자 살해 명령인 ‘파트와’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루슈디에 대한 ‘파트와’를 철회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8년이었다.》

루슈디가 탈식민주의적 시각과 ‘매직 리얼리즘 기법(현실과 가상의 혼합)’으로 쓴 소설 ‘한밤의 아이들’에서 주인공 살림은 인도가 독립한 1947년 8월 15일 자정에 태어난다. ‘한밤의 아이들’이란 그날 0시에서 오전 1시 사이에 인도에서 태어난 1001명을 지칭한다. 그들은 모두 독립과 더불어 시작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충돌로 인한 국가의 분단을 경험했다. 루슈디의 또 다른 소설 ‘분노’는 인류 문명이 타자에 대한 분노로 인해 파멸할 수도 있음을 예시하고 있다.

루슈디는 양극을 피하는 경계선상의 작가이다. 그는 사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루슈디의 문학세계에서는 선과 악, 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늘 유동적이다. 루슈디가 보는 삶의 현실은 대단히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계선상에 있는 카슈미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광대 샬리마르’(사진)는 루슈디 작품의 그런 특성을 잘 집약해서 보여준다. 예컨대 이 소설은 정의를 표방한 정치적 폭력이나 테러가 실은 개인적 한풀이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샬리마르가 맥스를 살해하는 진짜 이유는, 그에게 자기 아내 부니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복수는 재판 과정에서 정치적 대의명분으로 포장된다.

샬리마르와 부니의 비극적인 관계는 인도 내부의 이념적 분쟁을 상징한다. 종교적 차이와 기질적 차이로 두 사람은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자신들의 비극이 이국적인 것을 동경하는 부니의 성격이나 자신의 편협함이나 국내 분쟁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대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샬리마르는 서구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 테러리스트가 된다. 그러나 그의 증오 대상인 맥스가 나치 독일에서 탈출한 유대인이자 프랑스계 레지스탕스 출신이라는 사실은 독자로 하여금 복합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만든다.

‘광대 샬리마르’는 맥스와 부니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 딸 ‘인디아’의 서술로 시작된다. 이름만 봐도, 그가 서구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인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스를 살해한 샬리마르가 탈옥한 뒤 인디아를 찾아가 죽이려 하자 두 사람은 칼과 활을 들고 대치한다. 비극적인 것은 그 두 사람 모두 피해자란 점이다. 이는 우리가 어리석게도 피해자끼리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살라마르는 잘못된 과거의 산물인 ‘현실’을 부정하고 청산하려 한다. 문제는 원한에 사로잡혀 현실의 상징인 인디아를 죽이게 되면 그것은 곧 인도의 미래를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는 데 있다. 원래 균형을 잘 잡아 밧줄을 타던 샬리마르는 증오심 때문에 균형감각을 잃고 테러리즘의 광대로 전락해 파멸한다.

루슈디의 문학세계는 좌우 정치이데올로기로 분열된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랑과 포용으로 이념적 갈등을 봉합하는 대신 과거에만 사로잡혀 현실을 숙청하려 한다면 우리 또한 스스로의 미래를 파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살만 루슈디는…

1947년 인도 뭄바이의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나 파키스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분쟁과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를 경험했다. 1961년 영국으로 건너가 명문 사립 고등학교와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루슈디는 조국 파키스탄으로 돌아왔지만 곧 환멸을 느낀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약 4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루슈디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고 부커상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김성곤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