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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에서 한국축구에 금빛 낭보를 전해온 23세 이하(U-23) 대표팀 김학범(58) 감독은 귀국 이후 나흘 내내 잠만 잤다. 대회 기간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졌단다.
그래도 김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통산 5회, 2회 연속 AG 금메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축구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그는 “짐을 어제 풀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았다”며 웃었다. 동석한 이민성(45) 김은중(39) 코치, 차상광(55) 골키퍼(GK) 코치도 김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도 동감하는, 불과 얼마 전 함께 겪었던 사연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요 키워드를 통해 AG 김학범호의 뒷이야기를 정리했다.
● 포백
김학범(이하 김)=“수비 성향이 강한 사이드 백을 찾기가 참 어려웠다. 엔트리도 스리백을 토대로 뽑았는데 선수들이 어려워하더라. 코치들이 먼저 변화를 제안해 결정했다. 포백은 그동안 선수들이 많이 경험해봤고, 나 또한 포백을 즐겼다. 다만 마땅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부족해 걱정했는데, 우리가 공격을 지배하면 중원의 약점을 채울 수 있다고 봤다.”
● 보직
풀백이 워낙 적었기에 AG대표팀은 선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 자원의 포지션을 바꿔야 했다. 이 과정에서 출중한 풀백이 탄생했다. 김문환(23·부산 아이파크), 김진야(20·인천 유나이티드)는 윙 포워드가 아닌, 풀백을 맡아 진정한 성공시대를 열어젖혔다.
김=“보직 변경은 대성공이다. 포지션을 바꿔야 롱런할 수 있다고 조언해줬다. 혹자는 대표선수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완성된 선수도 만들 수 있다.”
● 조현우
차상광(이하 차)=“체중이 가벼워 부상이 경미했지만 만약 육중한 몸이었다면 큰 부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약간의 통증은 있었어도 본인은 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했다. 베트남과 4강전을 잘 마쳤다.”
차상광 코치, 김학범 감독, 이민성 코치, 김은중 코치(왼쪽부터).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눈물
우즈베키스탄전은 대단한 고비였다. 특히 2-3으로 재역전당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현장을 찾은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김판곤(49) 위원장을 비롯한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는 ‘동반사퇴’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김 감독도 힘에 부쳐 자신의 능력에 자괴감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4-3 승리로 마쳤지만 수적 우위를 점하고도 빈공을 반복한 제자들은 스승에게 크게 혼이 났다. 경기 직후 김 감독이 보인 눈물은 ‘감동’이 아닌, ‘분노’에 가까웠던 셈이다.
김=“솔직히 결승에서 만나는 것보다 8강이 낫다고 봤다. 그런데 분석한 것보다 훨씬 강한 상대라는 게 느껴졌다. 독려하는 게 한계가 있었고, 힘이 부쳤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도, 아이들도 인생을 건 승부였다. 연장전에 돌입하면서 한 마디를 해줬다.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라. 느끼고 기억하라’고. 사기를 북돋고 싶어, 조금이나마 기운을 불어넣고 싶어 일부러 스크럼을 짜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 일본
우승의 마지막 길목에서 마주친 상대는 일본이었다. 오랜 라이벌과의 대결은 그 자체로도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일본이 21세 이하의 영건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이겨야 했고, 밀려서는 안 됐다.
김=“딱히 지시는 하지 않았다. 다만 강하게 부딪히되, 파울은 줄이자고 했다. 퇴장을 우려할만한 상황은 있었으나 큰 걱정은 없었다. 이번 대회 심판 성향이 관대한 편이었다.”
김은중=“흥민이는 코치들의 일부 역할까지 해줬다. 솔선수범했고, 팀을 리드해줬고. 지도자들의 이야기보다 같은 선수가 해주는 이야기가 직접 와 닿는 법이다. 참 열심히 해줬다.”
● 올림픽
U-23 김학범호의 다음 목표는 2020도쿄올림픽이다. 과정은 만만치 않다. 내년 3월 2020 U-23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 예선을 거쳐 이듬해 태국에서 U-23 챔피언십 본선을 통과해야 한다. 이 대회가 올림픽 지역예선을 겸한다. 이미 라이벌들은 뛰고 있다. U-21 선수들을 따로 육성하는 국가도 있다. 평가전과 전지훈련 등 추진해야 할 업무가 산적하다.
김=“걱정스럽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국가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 중국과 일본도 열심히 뛰고 있다. 대강 준비하다가는 망신을 살 수 있다. 어설프게 준비할 수 없다. 다행히 협회 차원에서 관심이 크다. 이전 집행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아직 뚜렷한 방향 설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곧 우리의 역할을 시작할 참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