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3>노인 낙상사망 68%가 집안사고
○ 낙상 막기 위한 22종 노인 친화 설계
지난달 28일 장을 보고 돌아온 이복순 할머니(79)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옆벽에 설치된 안전 손잡이에 기댔다. 신발을 벗다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장치다. 현관 문턱 높이는 1.5cm가 되지 않아 발이 걸려 넘어질 가능성이 낮다. 이는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것들이다. 이 할머니가 사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위례35단지 공공실버아파트에는 집집마다 이런 노인 친화 설비가 13∼22종 마련돼 있다.
침실과 거실 다음으로 위험한 장소는 화장실이다. 변기에서 일어나거나 샤워를 하다가 바닥 물기에 미끄러지기 쉽다. 이 때문에 독일 등 선진국에선 호텔에 노인이 앉아서 씻을 수 있도록 샤워기 앞에 의자를 둔다. 이 할머니 아파트 화장실의 샤워기와 양변기 옆엔 손으로 짚을 수 있는 안전 손잡이가 있다. 바닥엔 미끄럽지 않도록 까끌까끌한 마감재를 사용했다. 세면대는 노인의 키에 맞춰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다.
새로 짓는 노인 공공임대 주택엔 이런 설비가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오래된 집들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주거급여를 받는 저소득층 노인이 사는 집에 편의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가구당 50만 원씩 지원할 예정이다. 지금도 장기요양 등급이 있는 노인이라면 보건복지상담센터(129)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안전 손잡이나 미끄럼 방지 매트 구입비를 일부 지원받을 수 있다.
○ 골든타임 위한 이웃의 ‘선한 오지랖’
안전 설비가 있다고 모든 낙상 사고를 막을 순 없다. 특히 홀몸노인은 집 안에서 쓰러지면 발견이 늦어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2011∼2016년 노인 낙상 사망자 1150명 중 791명(68.8%)의 사고 발생 장소가 집이었다.
위례35단지가 ‘노노(老老) 이웃 케어’의 생태계를 갖추는 데는 지역 복지관의 역할이 컸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성남위례종합사회복지관은 이곳 노인들을 위해 낮에 물리치료실과 텃밭을 열고, 저녁에 홀몸노인들이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공용 주방을 개방한다. 이웃이 자주 만나도록 해 자연스럽게 서로 돌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처럼 지역 복지관이 노인의 주거 안전에 적극 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내년부터 노인 주택 가까이에 복지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을 벌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산 당국이 “복지관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어야 한다”며 반대해 예산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상태다. 김유진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에게 집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주거공간에서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집과 복지관을 잘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