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檢 ‘법원 제 식구 감싸기’ 불만에… 법원 ‘법대로 조치했을 뿐’ 입장 검찰과 법원의 싸움은 망국의 길… 국회-언론, 홍문관처럼 處置해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예상과 전혀 다르다. 검찰은 당초 제기된 블랙리스트와 상고법원 추진 과정의 재판거래 의혹에다 비자금 조성으로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하고 있지만 진전은 느린 것처럼 보인다.
검찰은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기각 남발이 원인이라고 본다. 최근까지 200건 넘는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대부분 기각됐다. 수사팀은 영장 청구 및 기각 사실을 연일 언론에 공개하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반사건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은 5.2%인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은 90% 가까이 기각되는 걸 보니 결국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취지다. 반면 법원은 ‘독립된 영장담당 법관의 법에 따른 조치’라는 입장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선언하고 사법부 독립 보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법부는 선거로 뽑혔다는 민주적 정당성도 없고, 스스로를 보호할 무력도 갖고 있지 않다. 오직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권위와 독립을 보장받는 취약한 입장이다.
우리 형사사법 제도는 검사가 수사해서 소추하고 법관이 심판하는 대립구도로 설계돼 있다. 검찰에 문제가 있으면 자체 수사와 소추가 어렵기에 특별검사 제도를 상설화했다. 법원에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해서 소추하면 된다. 검사가 법관의 눈치를 봐서 대충 수사하거나, 법원 재판이 온정주의나 연고주의에 치우칠 위험성은 있다. 이것은 제도적 문제이니 제도의 재설계와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과거 동양의 법제에는 대간(臺諫)제도가 있었다. 대관(臺官)인 사헌부는 관리들에 대한 감찰과 탄핵을 했다. 간관(諫官)인 사간원은 간쟁과 정치 일반에 대한 언론 역할을 담당했다. 목숨을 걸고 임금과 대신의 잘못을 규찰, 탄핵하는 대간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특권이 부여됐다. 객관적 근거 없이 시중 풍문만으로 고관이나 중신을 탄핵할 수 있었으며(풍문탄핵·風聞彈劾) 일단 탄핵되면 누구라도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런 막강한 특권을 가진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들, 즉 대간이 부패하거나 상호충돌하면 국가 기본이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에 세종 대의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이 대간의 하나로 편입되면서 삼족정립(三足鼎立)의 삼사(三司)제도가 확립됐다. 대간의 잘못이 있으면 제3의 기관인 홍문관에서 탄핵하고, 양사의 의견이 대립할 때는 홍문관이 사실관계를 조사, 결정하는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게 구축된 대간제도는 600년간 지탱하면서 조선 왕조와 흥망성쇠를 같이했다. 대간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때는 태평성대를 이뤘지만, 당쟁에 물들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국가권력이 한 가문에 집중되는 세도정치와 망국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법원과 검찰이 계속 싸우면 어떻게 될까. 법조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회와 언론이 과거 홍문관의 역할, 즉 처치에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