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권력은 공포다(Real power is fear).” 한비자(韓非子)나 마키아벨리가 했을 법한 이 말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 정확히는 “진정한 권력은, 나는 이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공포다”이다. 그 발언의 ‘공포’란 단어가 우드워드가 최근 낸 신간의 제목이 됐다.
▷중국 영화 ‘영웅’을 보면 진시황이 자객 형가에게 황급히 쫓기는데도 근위병들이 명령이 없어 단 위로 오르지 못하고 단 아래서 부동자세로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진시황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의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백악관은 공포의 집이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5일 뉴욕타임스에 자신을 트럼프에 맞서는 ‘레지스탕스’라고 소개하며 익명의 칼럼을 써서 트럼프 행정부를 고발한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신간 ‘공포’에는 게리 콘 백악관 전 국가경제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폐기하기 위해 서명하려 했던 서한을 대통령의 책상에서 몰래 훔쳐 나왔는데도 대통령은 서한이 없어진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미 FTA를 폐기하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한 국가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생각이 슈퍼파워 미국의 대통령 머릿속에 충동적으로 일었다 잊혀진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공포는 단순히 무서워서라기보다는 힘을 가진 자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바보’라고 불렀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수준에서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 같은, 미국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사안에 의문을 표시하니 참모들은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대북 선제타격 준비를 지시하고 무력시위를 벌이다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김정은을 치켜세우며 협상하니, 한반도에 평화가 다가온다고 기뻐하는 것이 맞는가.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