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경기 4위… 휴가차 한국 돌아온 박항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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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이 6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에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사상 첫 ‘4강 신화’를 쓴 그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일치단결했고 국민들이 열렬히 응원해서 거둔 결과”라고 말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입국장 문을 나오는 순간 번쩍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그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6일 오전 8시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59)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베트남을 사상 첫 4강으로 이끈 그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모국으로 돌아왔다. 베트남 축구 역사를 다시 쓴 그의 주변에는 50명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박 감독은 “특별하게 한 것도 없는 데 이렇게 아침 일찍 맞이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또 “작은 성적을 거뒀는데 거스 히딩크 감독님과 비교하는데 부담스럽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수들이 베트남 축구에 발자취를 남겼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지난해 10월 25일 베트남 사령탑에 부임한 그는 1월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에 이어 아시아경기 4강 신화까지 1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탁월한 지도력을 펼쳤다. 이런 성과로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베트남 방송에 자주 보도되는 건 알고 있다. 길에 나가면 베트남 국민들이 감사 표시를 한다.”
그는 이번 대회 4강전에서 한국과 맞붙은 데 따른 심적인 스트레스도 털어놓았다. “솔직히 엄청 부담됐다. 내가 한국 사람이고 한국팀을 만나서이기도 하지만 결과에 따라 다양한 스토리가 나올 수 있었다. 경기에 앞서 한국이 절대 못 넘을 벽은 아니라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는데 너무 긴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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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대표팀 수비수 쩐딘쫑(21)이 아시아경기 기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린 ‘8초 동영상’ 화면 캡처.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는 감독님’이라는 소개글과 함께 박항서 감독이 직접 마사지를 해주고 있는 장면이다. 쩐딘쫑 페이스북
박 감독이 아시아경기 때 선수들에게 발 마사지를 해준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유튜브를 잘 못 본다. 그게 기삿거리가 될지 몰랐다. 원래 의무실에 자주 가서 부상자를 확인한다. 그날 의무진이 한 명밖에 없어 손이 모자라 직접 해줬는데 그 선수가 찍어서 동영상을 올렸다. 스태프면 선수들을 위해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박 감독은 월 25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계약 조건이 동남아 국가의 다른 축구대표팀 감독보다 턱없이 적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선수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간 외교관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에 박 감독은 “축구라는 작은 걸 가지고 그런 역할이 되겠는가. 베트남 축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다. 태극기를 향해선 늘 예를 갖춘다”는 말로 답했다.
박 감독은 11월 열리는 동남아시아선수권대회(스즈키컵)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 대회에 대비하기 위해 10월 17일부터 10일간 경기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전지훈련을 할 예정이다.
“가면 갈수록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부담도 되지만 걱정한다고 될 건 아니다. 즐기면서 도전해야 한다.” 베트남을 뜨겁게 달군 박항서 매직의 ‘시즌 3’가 벌써부터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