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든 투자 관련 사안에서 국내 사법제도를 건너뛰어 국제 중재로 직접 제기하는 것도 문제다. 재협상에서 최소한 ‘투자계약’ 사안에 대해서는 국내 소송을 먼저 거친 뒤 중재로 이행하도록 변경할 수 있었다. 그래야 원래 국내법적 사안에 대한 최소한의 사법주권을 보호하고 단심으로 이뤄지는 국제 중재 판정의 오류 가능성도 줄이게 된다. 개정 문안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투자자에게 ‘커다란 손해’가 가해지면 간접수용으로 ISD 제소가 가능한 것도 문제다. 투자자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취하는 일련의 정부 규제 조치가 원래 간접수용의 개념인데도 한미 FTA는 손해 발생이라는 결과지향적인 정의로 탈바꿈했다.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 상황인지도 고려하지 않고 정부 정책의 의도도 중요하지 않다. 미국 론스타의 제소와 이란 다야니 가문의 제소 모두 외환위기라는 비상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한 기업 인수 관련 규제가 아닌가. 이 점에 대해서는 재협상에서 손도 못 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철폐될 예정이었던 화물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추가로 20년 연장돼 앞으로 24년 동안 화물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차세대 성장동력인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정책인 글로벌 신약에 대한 약가 제도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정부가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에 부여하는 약가 우대 정책은 종언을 고해야 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최대 목표인 자동차 비관세장벽, 화물자동차 관세, 신약 약가 부문 등을 모두 내준 셈이다. 도대체 무슨 이익균형이 이뤄졌단 말인가.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