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7년전쟁(1756∼1763년)은 슐레지엔의 영유권이 도화선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알자스 분쟁과 ‘빼앗긴 체코를 되찾자’라는 독일의 염원은 1, 2차 대전을 일으켰다. 팔레스타인의 진짜 주인이 누구냐는 문제는 현재까지도 중동의 논쟁거리다. 진짜 영토 회복이 목적인 전쟁도 있지만 아득한 과거의 소유권 논쟁은 곧잘 전쟁의 명분으로 이용된다. 993년 서희와 소손녕의 회담장에서도 그랬다. 거란의 소손녕은 고려는 신라의 후예니 신라의 옛 땅에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이며 옛 소유권으로 따지면 너희의 수도도 우리 땅이라고 맞받아쳤다. 소손녕은 철수했고, 의주에서 철산, 선천 등 평북지역 강동6주를 고려의 영토로 인정했다. 서희의 외교술은 지금까지 실리외교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후손들은 전혀 실리적이지 못했다. 실리 외교라는 의미부터 그렇다. 서희의 외교를 본받으라는 사람들은 손해보다 이익이 많을 때 손도 안 대고 문제를 해결할 때 실리 외교라고 이해하는 듯하다. 절대 아니다. 실리란 명분과 대차대조표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에서 내가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다. 내가 50을 주고 100을 얻어야 실리가 아니다. 내게 꼭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면 1을 얻고 100을 줄 수도 있다는 태도가 실리다.
실리를 얻은 방법도 잘못 이해됐다. 세상에 어떤 군대가 ‘여기는 원래 우리 땅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냥 돌아가는가? 애초부터 계승 논쟁은 형식적인 화두였을 뿐이다. 서희는 거란의 침공전략이 ‘선 여진, 후 고려’라고 간파하고 거란의 여진 공격을 돕겠다는 미끼를 던졌다. 소손녕이 회군하자 서희는 거란과 협공해 여진을 몰아내고, 즉시 강동6주에 성을 쌓아 거란의 침공에 대비했다. 실리란 냉정하고 수단에 명분과 자존심 따위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못 했고, 지금도 그렇다. 정부와 지식인은 이런 태도로 설득하기는커녕 명분을 앞세워 과거와 정책을 비판하고 자신을 포장하기 바쁘다. 서희의 영혼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내 이야기를 빼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