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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철희]동방경제포럼과 東北亞

입력 | 2018-09-11 03:00:00


동서로 7700km에 걸친, 시차가 11시간이나 되는 러시아는 명실공히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유라시아 대국이다. 150년 전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는 지금 북미까지 포함한 ‘유라시아메리카’ 국가를 자처했을지 모른다. 광대한 영토만큼 러시아의 역사적 문화적 경계는 모호하다. 유럽 국가를 지향해온 오랜 역사 속에 지금은 유럽 강국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번번이 유럽과 충돌을 일으키는 불청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21세기 차르’를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新)동방정책’도 이런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냉전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러시아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피난처를 찾으려는 노력을 펴야 했다. 자연스럽게 2015년 시작된 ‘동방경제포럼’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푸틴 대통령이 3기 정권 출범과 함께 내세운 ‘강한 러시아’ 전략에서 이제 동아시아는 중요한 한 축이 됐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동방경제포럼이 오늘부터 사흘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다. 이 포럼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나 연쇄 회담을 한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일방통행으로 심기가 불편한 스트롱맨 3인의 대화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러시아는 올해 같은 기간에 군사훈련 ‘보스토크(동방) 2018’도 실시한다. 병력 30만 명과 각종 군사장비가 총동원되는 37년 만의 최대 규모 훈련으로 중국과 몽골 군대도 참여한다. ‘동방의 근육’을 과시하는 무력시위인 셈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만 잘 풀렸다면 이번 포럼은 북핵 외교 무대가 될 수도 있었다. 북한과 가까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석이 용이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합류하면 종전선언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그게 어그러지면서 남북미가 빠진 북핵 게임의 ‘2부 리그’ 정상들만 모이지만, 중-일-러 3국은 북핵 본게임이 시작되면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역들이다. 내년엔 북핵 6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 이 또한 헛된 기대로 끝날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