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미래가치와 수익률에 따라 변동 초과수익률 커져 돈 몰리면 가격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연간 임대료가 2000만 원인 서울 어느 아파트의 장기균형 가격은 금리가 4%일 때 5억 원이다. 여기서 ‘금리’는 기준금리에 감가상각률, 보유세율, 각종 위험에 대한 할증률 등을 더한 최소한의 ‘필요수익률’이다. 이 아파트는 실제로 3년 전까지 5억, 6억 원대에 거래됐다. 그러나 작년 말엔 10억 원, 최근엔 13억 원이 됐다. 지난 몇 달간 임대료나 기준금리에 변화가 없었는데 어떻게 가격이 몇억 원씩 뛰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균형을 결정하는 변수값들이 사실은 지금부터 먼 미래까지에 대한 평균적 예측치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예상이 갑자기 바뀌면 균형 집값도 갑자기 바뀐다. 미래에 임대료가 오르리라는 예상, 또는 필요수익률이 떨어지리라는 예상이 퍼지면 당장 아무 일이 없어도 집값은 오른다. 예컨대 지하철역이 집 근처에 놓인다는 뉴스가 나오면 실제 임대료는 몇 년 후부터 높아지겠지만 집값은 이 예상을 반영해 바로 오른다. 또 기준금리나 보유세율, 리스크 등이 생각보다 낮아져 최소 필요수익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실제 기대되는 수익률과 필요수익률 간의 차이, 즉 초과수익률이 커져 돈이 몰리며 집값이 오른다. 이때 일종의 병목현상 때문에 집값이 당분간 새 균형값보다 높아지는 ‘오버슈팅’도 발생한다.
둘째는 생각보다 보유세가 약하고 금리 인상도 더딘 데다 고령화로 ‘안전자산’ 수요가 급증해 집 보유를 통해 얻어야 할 최소 필요수익률이 낮게, 즉 초과수익률이 높게 유지된다는 예상이다. 특히 집은 주식·채권에 비해 각종 세제 혜택과 편법을 활용하기 쉬워 최고의 가치 저장 및 상속·증여 수단이 된다는 믿음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인기 지역 주택 수요의 폭증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만약 안전하고 유망한 자산으로 인식되는 서울 집의 가치 저장 및 상속 효용이 너무 커져 집을 그냥 비워둬도 괜찮다고 할 정도까지 필요수익률이 낮아지면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장기균형을 좌우하는 이런 예상들이 시장에서 굳어질 때마다 집값은 뛴다.
정부가 정말 집값을 잡고 싶다면 시장의 기존 예상을 다음과 같이 바꿔주면 된다. 즉, 소득이 늘어도 주거비 부담은 낮아져 ‘소득주도성장’의 과실이 지대로 흡수되는 일은 없다. 핵심 요지에 꽤 괜찮은 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고, 로또 선분양 대신 선진적 분양제도가 도입된다. 어디에 살든 맞벌이 부부의 육아 걱정은 없다. 인기 지역에 안 살아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지방에도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 보유세는 시가에 맞게 부과된다. 보유세가 노인복지 재원이니 정권이 바뀌어도 이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상속·증여에 불법·편법은 안 통한다. 통화·금융정책은 나라가 집과 빚의 인질이 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는다. 시장에 이런 믿음들이 자리 잡으면 집값 불안은 잦아들 것이다. 정권의 명운뿐 아니라 나라 경제의 흥망이 걸린 일이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