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남의 땅에 농사를 계속할 수 없으니 이제 내 땅을 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의 땅값이 무지 비싸다고 했더니 레돔이 호기롭게 평당 1만 원을 내겠다고 했다. 정착지를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말 그대로 후덜덜해졌다. 우리가 생각한 땅값의 열 배, 스무 배는 더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찾아보면 싸고 괜찮은 땅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 내 사과가 대한민국에서 제일이야. 서울에 높은 분들이 다 우리 사과를 대먹지. 유명해. 여기 사과 팔아서 아들 셋 대학 보내고 장가 다 보냈어. 그런데 이제는 정말 힘들다. 못해 먹겠어. 우리 마누라 좀 봐.”
할아버지가 옆에 서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농사일에 삭아 내린 작은 몸의 할머니가 두려운 듯한 눈길로 우리를 보았다. ‘나는 시집와서 이곳에서 죽도록 일했답니다. 절대 아프면 안 될 무릎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요. 올해 이 사과밭을 못 팔면 나는 또 일해야 해요. 이제는 농사일이 무서워요. 제발 우리 밭 좀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뒤쪽으로는 몇 년째 버려 놓은 밭도 있었다. 밀림처럼 우거져 있었다.
“이 사과밭을 보면 내 가슴이 아파. 남부끄러워. 자식 중 한 놈이라도 물려받겠다면 좋겠지만… 잘해낼 수 있겠나. 그렇게 쉽게 덤빌 일이 아니야.”
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집을 나설 때면 늘 설레는 기분으로 간다.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햇빛으로 물든 넓적한 돌 위에 앉아 먼 산을 볼 수 있는 곳,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벌들의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러나 현실은 늘 반대다. 너무 조잡하거나, 북향이거나, 고속도로 밑이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너무 이상하거나, 너무 비싸거나…. 대체로 우리는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터덜터덜 발걸음을 끌면서 에잇 뭐야, 땅 구하기 이렇게 어려워서 어떻게 정착하겠어. 땅을 보고 온 날이면 미래의 방향점이 흔들린다. 과연 우리 땅에 우리 뜻대로 농사를 지을 날이 올 것인지 모르겠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젊은 청년들이 사표 내고 농촌에서 미래를 봤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 있잖아. 그래서 몇 년 만에 몇 억 원을 올리며 성공했다는 그런 애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지? 온통 유모차 밀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밖에 없던데. 그런 이야기 진짜일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레돔은 벌컥 화를 낸다. 도시에서 잘나가는 놈은 농촌에서도 잘나가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는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밭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편의점 알바비 정도도 못 버는 것이 현실이야. 노동비는커녕 농약비도 못 건질 걸. 그런데 농지마저 이렇게 비싸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농사가 이미 힘든 노동인데 돈까지 싸 짊어지고 와서 밭을 산다면, 그 놈은 정말 미친놈이지…. 어, 그러면 우리도 미친놈에 속하는 건가? 여하튼 간에 한국 농촌을 살리는 길을 내게 묻는다면 ‘한 평 1만 원 이하’ 이것밖에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겠군.”
한 평 1만 원 이하이라니, 전국의 땅 주인들이 뀌는 요란한 콧방귀 소리에 오늘 밤엔 잠을 이루기가 어려울 것 같다.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