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北매체, 9·9절 다음날 대대적 보도
북한 매체들이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9·9절) 하루 뒤에야 관련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지 않은 데 이어 보도에서도 ‘로키 행보’를 이어간 것.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방북한 러시아 대표단을 만나서는 “일방적인 비핵화 계획은 없다. 러시아가 제재 완화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중앙TV는 10일 오전 9시 10분부터 2시간가량 전날 열린 열병식을 녹화 방송했다. 보통 열병식 당일 오후에 실황을 공개했던 데 비춰 보면 반나절 이상 보도 시점을 늦춘 것이다. 전날 외신들에 속보를 ‘양보’하며 침묵했던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도 이날 오전부터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통상 6개 면을 내는 노동신문은 14개 면을 펼쳤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9·9절 당일에만 5건의 행사를 소화하며 분주한 행보를 보였다. 새벽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이어 오전 김일성광장으로 이동해 열병식에 참석했으며, 오후엔 노동당 본청사에서 중국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접견했다. 이어 5·1경기장에서 각각 열린 중앙보고대회와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의 개막 공연에 참석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이 9·9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직접 행사들을 챙겼다”면서 “일정 소화엔 큰 무리가 없어 보였지만 (체력에 부쳐) 난간을 집거나 기대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고 전했다.
대미 메시지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 전달했다. 김영남은 중앙보고대회에 5년 만에 보고자로 나서 “경제건설 대진군을 다그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창건된 지 2년도 못 되는 청소한(역사가 짧은) 공화국이 제국주의 강적을 때려 부수고”라고 강조했지만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부인 리설주와 5·1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의 개막 공연을 관람했다. ‘아리랑’ 이후 5년 만에 재개된 이번 집단체조엔 학생 1만7490명이 동원돼 인권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전과 달리 반미 구호가 사라졌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손을 맞잡거나 껴안은 모습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됐다.
한편 김정은은 8일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하원의장과의 접견에서 “일방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계획이 없고, 대신 이미 취한 (비핵화) 조치들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고 러시아통신 리아노보스티가 10일 보도했다. 통신은 마트비옌코 의장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약화시키는 데 러시아가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