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6일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기후난민 텐트 200개가 들어섰다. 진짜 텐트가 아니라 설치미술가가 골판지 등으로 만든 미니어처 난민촌이었다. 베를린을 거쳐 런던 마드리드 등으로 이주한 이 난민촌은 지구온난화에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이 자신들 탓에 생긴 난민을 모르쇠 하는 현실을 향한 질문을 담고 있다.
▷기후난민이란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로 대대손손 살아온 생활터전을 빼앗긴 이들을 말한다. 과거엔 전쟁과 박해를 피해 살던 곳을 떠난 난민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극단적 이상기후로 생태환경이 변하면서 고향을 등지는 난민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은 2050년까지 1억4000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리아 사태의 이면에도 기후변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내전 직전 2007∼2010년에 역대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면서 농촌이 붕괴되고 150여만 명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렇잖아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사회가 폭력과 갈등의 불꽃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후이변이 내전의 촉매제로 작용한 셈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에 자리한 국가들도 기후변화가 정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위험지역으로 지목된다. 이곳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남기보다 지중해를 건너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100만∼200만 난민을 놓고도 쩔쩔매는 유럽 사회는 20년 뒤 1000만∼2000만 명으로 늘어난 난민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묘안을 찾기란 쉽지 않을 터다.
▷2015년 세계 각국 대상 설문조사에서 지구촌을 위협하는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기후변화가 첫손에 꼽혔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9일 유엔 기후변화협약 실무회의가 빈손으로 끝난 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말했다. “기후변화는 우리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이 죽음의 온실가스 배출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임박한 파국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다들 귀를 닫고 있다. 기후변화와 기후난민을 이대로 방치하지 않는 것, 이 시대 인류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지 싶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