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명 산업2부 기자
11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서울 강남구 공동주택지원과 유선 전화기에는 자동응답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과장 이하 전 직원 연결이 불가능했다. 뒤늦게 강남구 공보실과 통화해 보니 “우리도 요새 그 부서 직원들을 접촉하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공동주택지원과는 구청에서 주택 임대사업자 등록을 해 주는 부서다. 강남구 측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다주택자 임대사업 혜택을 줄이겠다’고 한 이후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러 몰려드는 민원인들 때문에 매일 밤 12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김 장관은 “투기꾼에게 과도한 선물을 줬다”는 표현을 썼다. 여기에 놀란 다주택자들은 마지막 ‘선물’을 받기 위해 구청으로 몰려들었다. 지난달 강남구의 임대사업자 등록은 345건 있었는데, 이달엔 10일까지 591건 등록됐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9월 등록건수가 전월 대비 5배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주택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혜택을 주기로 했다가 다시 회수하는 사례는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투기꾼’들에게 그런 선물을 준 당사자가 다름 아닌 정부이기 때문이다.
1년 전 8·2부동산대책 발표 당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다주택자들은) 임대사업자로 전환하든지 주택을 처분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올해만 10만 명 정도의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택했다. 그 결과는 시중에 주택 매물이 마르고, 임대사업자가 대출 규제를 피해 집을 더 사들이는 ‘정책 실패’로 귀결됐다.
주택 공급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 전문가들이 “주택 공급 시그널을 줘야 집값이 잡힌다”고 조언하던 지난 1년 동안 국토부는 “공급은 충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8월 말이 되어서야 정부가 “수도권에 36만 채의 집을 더 지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제 그 말을 믿고 시장에 집을 내놓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잦은 말 바꾸기가 쌓이면 시장이 정부를 우습게 본다. 시중에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반대로만 하면 돈 번다”는 말이 나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도입한 대책의 부작용이 너무나 커 반드시 번복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조용히 덮을 게 아니라 장관이든 청와대 수석이든 기존 정책을 책임지는 당국자가 나와 경과 설명이라도 해야 한다. 그 과정이 있어야만 실패한 정책에서 배우는 것도 생긴다.
박재명 산업2부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