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서 공격적인 경우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유난히 공격적인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이도 일상에서 나름대로 화도 생기고 스트레스도 받는다는 것이다. 대개 놀이에서 공격적인 설정이 잦은 아이들은, 평소에 화가 많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많이 혼나는 경우가 많다.
겁이 많고 불안하고 많이 치이고 당하는 아이들도, 공격적인 놀이로 마음을 표현할 때가 꽤 많다. 아이들은 다양한 이유의 해결되지 않은 어떠한 내면의 요소들을 놀이 안에서 공격적으로 표현한다. 물론 그중에는 실제로 공격적인 아이도 있다. 남자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시기적으로 놀이가 조금 과격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뭔가 섭섭하게 했는데, 아이는 그 자리에서 “야 너, 나한테 왜 그래?”라고 말할 힘이 없었다. 이런 마음이 놀이 안에서 칼을 들고 찌르듯이 덤비며 “맛 좀 봐라” 하는 것으로 나올 수도 있다. 공격적인 놀이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라도 놀이 안에서 마음을 표현하고 해결해가는 것이, 표현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따라서 아이가 공격적인 놀이를 할 때는 놀이 안에서 표현되는 것을 막으면 안 된다. “찌르는 건 안 하는 거야. 하는 척만!” 식으로 제한은 설정해 주지만, “너 그거 나쁜 행동이야. 하지 마”라든가 “총, 칼 다 갖다 버릴 거야” 해버리면, 아이는 그나마 상징적으로 다루기 쉬운 형태로 표현하는 것마저 못하게 되어 버린다.
찌르는 순간은 “얏∼” 하고 소리만 내는 거라는 식으로 대안을 주면서 아이가 놀이 속에서나마 자기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해줘야 한다. 아이는 이 과정을 통해서 자기의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을 해결하고, 그 다음엔 조절을 좀 배운다. 조절 안에서는 마음껏 표현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놀이는 상징을 의미하기 때문에 너무 현실적으로만 다루면 안 된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공격적인 설정이 지속된다면 잘 관찰했다가 전문가와 상의할 필요는 있다. 아이가 감당해내야 할 감정이 너무 큰 것이라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어떤 아이는 맨날 자동차를 부딪치면서 교통사고가 나는 놀이를 했다.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죽었다. 진료해 보니 아이는 한 1년 전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는데, 그것이 너무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상징적으로 계속해서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체로 피가 나고 찢기고 죽이는 등 잔인한 설정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의외로 무섭고 불안한 아이들이 많다. 자기가 무서워 죽겠는 것이다. 그래서 더 세고 강력한 것을 얘기함으로써 잠깐 불안을 잊는 것이다.
어른들도 자기 안에 너무 깊은 갈등이 있는데 현실에 꺼내 놓는 것이 감당이 안 되면, 그것을 꿈으로 꾼다. 아이들의 공격적인 놀이도 그것과 같다. 약간 상징적으로 자기가 좀 다루기 쉬운 형태, 순화된 형태로 놀이 속에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