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밀려 공격 전개 애먹어… 미드필더-수비수 중원부터 쩔쩔 패스 미스로 수차례 위기 맞아… “강팀 압박 이겨낼 비법 찾아야” 손흥민 혹사 논란속 또 풀타임… “괜찮아요 멋있어요” 팬들 박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계적 강호를 상대로 90분간 모든 힘을 쏟아낸 뒤였다.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플래시를 켠 휴대전화를 흔들며 “괜찮아요! 멋있어요!”라고 외치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선수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엿보였다. 월드컵 등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발견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칠레와의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겼다. 손흥민(토트넘) 황의조(감바 오사카) 기성용(뉴캐슬) 등 정예 멤버를 선발로 내세웠지만 칠레의 강한 압박에 고전했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한국은 1승 1무를 기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위이자 2016 남미축구선수권대회(코파아메리카) 우승팀인 칠레의 전력은 강했다. 칠레는 유벤투스(이탈리아),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 명문 팀을 두루 거친 미드필더 아르투로 비달(FC바르셀로나) 등 활동량이 많은 미드필더들을 앞세워 한국을 전방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당황한 한국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은 패스 미스를 저지르며 위기를 맞았다. 특히 선발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은 상대 공격수가 자신에게 달려들 때 킥 실수를 범하면서 역습을 허용하는 등 흔들렸다. 수비수 장현수(FC 도쿄)는 경기 막판 백패스로 결정적인 찬스를 허용하기도 했다.
볼을 소유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것을 중시하는 벤투 감독이지만 한국은 전반 한때 39%의 낮은 점유율(칠레 61%)을 기록하는 등 공격 전개에 애를 먹었다. 전반 21분 황희찬(함부르크)의 침투 패스를 받은 황의조가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섰으나 슈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통상 외국 팀이 한국에서 경기할 때 시차 적응 문제 등으로 제 기량을 못 보여줄 때가 많은데 칠레는 수비 조직에 약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쳤다”고 말했다.
후반 들어서도 주도권을 쥔 쪽은 칠레였다. 양쪽 측면을 돌파한 뒤 중앙으로 올리는 날카로운 크로스로 한국 골문을 공략했다. 한국은 수비에 집중한 뒤 세트피스 상황에서 반전을 꾀했다. 후반 23분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수 장현수의 헤딩슛이 골포스트 옆으로 빠져나간 것이 아쉬웠다. 경기 막판 양 팀은 역습 상황에서 골 기회를 맞기도 했지만 공격진의 골 결정력 부족으로 득점에 실패하며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벤투호’는 압박이 강한 팀을 상대로 안정적 경기 운영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상대의 강한 전방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후방에서부터 이를 풀어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경우 짧은 패스보다는 정확한 긴 패스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예상대로 어려웠던 경기였다. 우수한 선수와 경험이 많은 선수가 있는 팀을 상대로 우리는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지배하는 경기를 펼치려고 했고 우리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4만127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뜨거운 축구 열기를 실감케 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유효 좌석은 4만760석이다. 현장 판매분(400장)을 사기 위해 오전부터 매표소 앞에 줄을 선 팬들도 있었다. 암표상들은 정가보다 2배 높은 가격으로 티켓을 팔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금메달 멤버인 손흥민과 이승우(베로나) 등이 모습을 드러낼 때는 ‘소녀팬들’의 뜨거운 응원이 쏟아져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수원=정윤철 trigger@donga.com / 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