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악화된 고용 참사]고용 한파 넘어 빙하기 우려
미국 일본 유럽 각국의 고용 사정이 개선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고용시장만 추락하는 것은 경기 같은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 방향을 잘못 잡은 일자리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대로는 고용재난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 소득수준 낮은 취약계층이 더 큰 타격
무엇보다 일자리를 잃은 상당수는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계층일 가능성이 높다. 취업자 수가 많이 줄어든 대표적인 직업군은 장치·기계·조작조립 종사자(―12만 명), 판매 종사자(―8만4000명), 단순노무 종사자(―5만 명)다. 직업별로 숙련도가 요구되기도 하지만 경력이 없는 구직자가 진입하기에 상대적으로 쉬운 일자리가 많은 직업군이다. 종사상 지위를 봐도 임시근로자(―18만7000명), 일용근로자(―5만2000명)가 많이 줄었다.
8월 고졸 실업자는 49만2000명으로 지난해 8월보다 25.2%(9만9000명) 늘었다. 대졸 실업자 증가 폭(2만2000명·4.5%)보다 훨씬 크다. 저학력자들이 빠르게 고용시장에서 탈락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도 “경기가 부진하거나 사업장에 위기가 오면 안정성이 떨어지는 계층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해 저소득 계층을 지원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이들 계층에 독(毒)이 되며 역효과가 난 셈이다.
○ 나랏돈 받는 공공 일자리만 확대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고용 악화의 주된 이유를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해야 할 사람이 줄어든 만큼 취업자 수 증가 폭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8월 15∼64세 인구는 지난해 8월보다 7만1000명 줄었다. 그러나 15∼64세 취업자 수는 16만1000명 줄었다. 인구 감소 폭의 2배가 넘는 수준으로 신규 취업자 수가 줄어든 셈이다.
경비원 등이 포함된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 취업자도 11만7000명 감소하며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이 줄었다. 현재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은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인상 말고는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도 고용 상황이 경제위기를 연상시킬 만큼 악화된 것이다.
지난달 제조업에서는 일자리 10만5000개가 사라졌다. 4월 이후 5개월째 취업자 수가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제조업은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규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의 취업자 수가 14만 명 이상 늘었고 공공행정 분야의 취업자 수는 3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정부가 공공 중심의 일자리 정책을 펴면서 인위적으로 고용을 늘린 결과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분야만 고용 한파에서 비켜나 있는 셈이다.
○ 정책 실험하다 경제 망가질 판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정부발 고용대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근본적인 원인 분석은 제쳐둔 채 재정 확대만 외치고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무리한 정책을 계속 밀어붙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