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전기차 설계한 테슬라, 생산 차질로 총체적 난국 빠져 한국도 제조업 구조조정 와중에 현장의 핵심 기술 인력 못 지키면 혁신적 개념 설계도 공염불 될 것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누가 뭐라 해도 테슬라는 혁신적인 전기차의 개념 설계를 제시했다. 그런데 정작 그 개념 설계대로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훌륭한 조각가가 기가 막힌 스케치를 했는데, 그 밑그림대로 깎아 줄 탁월한 석공이 없는 것이다. 실행 역량은 없는데 창의적 개념만 떠들면 허풍쟁이 취급을 받거나 허술한 결과물을 만들어놓고 웃음거리가 되는데, 사업적으로도 망하기 십상이다. 지금 테슬라의 모습이 딱 그렇다.
테슬라가 생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동안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모델을 우후죽순 내놓고 있다. 평생토록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급 석공들이 처음 보는 조각가의 혁신적 밑그림을 쓱 훑어보고는 더 완성도 높은 조각을 만들어 출품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랬듯 테슬라는 불굴의 의지로 또다시 위기를 극복해낼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고 나 역시 그렇게 기대한다. 그러나 테슬라가 실행 역량을 빨리 확보하지 못하면 기존 기업에 전기차 시장을 내어주는 것은 시간문제다.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혁신적인 퍼스트 무버들이 반짝 빛나다가 사라진 것이 혁신의 역사에서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의 산업계는 다행히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계적 수준의 실행 역량을 갖추었다. 그러나 최근 이 실행의 기반이 빠르게 소실되고 있다. 비싼 땅값과 인건비 등 여러 이유로 비용이 너무 높아졌다. 공장이 해외로 옮겨가기 시작한 지는 오래고, 현장의 고급 기능 인력들이 퇴직하고 있는데 이를 이어갈 다음 세대는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제조업 구조조정의 와중에 그나마 있던 실행의 고수들도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 산업의 주춧돌이자 혁신 기반인 실행 역량을 지켜야 한다. 해외로 나간 공장이 어떻게든 돌아오도록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평생교육 체제를 혁신해서 새로운 기술 인력을 키우고 기존 인력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구조조정 와중에 핵심적인 기술 인력은 우리 산업사회가 필사적으로 품어야 한다. 실행의 고수들이 존경받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하다. 실행을 못 하면 혁신적 개념 설계도 공염불이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