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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공학, 신약개발… 우리 조상은 이미 알고 있었네

입력 | 2018-09-14 03:00:00

추석 ‘사극영화’로 본 전통 과학기술




영화 ‘명당’의 한 장면과 행정리 마을숲의 모습이다. 조선시대 풍수는 ‘환경을 사람이 살기 좋게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현대의 환경 공학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이라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최원석 교수·쇼박스·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한가위를 앞두고 다양한 사극 영화가 개봉된다. ‘명당’과 ‘물괴’, ‘안시성’ 등이 줄줄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안방극장에서도 연휴 내내 최근 개봉한 사극 영화들을 줄줄이 편성할 예정이다. 추석 극장가 개봉작과 안방극장 특선영화 중에서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을 엄선해 학자들의 해설을 들어봤다.

○‘풍수’는 조선판 환경공학

19일 개봉하는 영화 ‘명당’은 풍수를 소재로 다룬다. 소위 ‘왕을 배출하는 천하 명당’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땅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미신이지만 조선시대 풍수는 ‘환경을 사람이 살기 좋게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현대의 환경공학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이라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최원석 경상대 기금교수(명산문화연구센터장)는 전국의 마을숲을 ‘환경을 바꾼’ 사례로 꼽았다. 예를 들어 전북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에 조성된 마을숲은 약 190년 전 마을 주민들이 조성했다. 마을숲을 조성하기 전에는 화재와 수해가 자주 발생해 인명피해가 컸는데 마을숲을 조성한 뒤부터 서서히 평온을 되찾았다. 최 교수는 “행정리 마을숲이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을 막아줘 화재를 예방하는 방풍림 역할을 하고,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하는 걸 방지하는 방수림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당은 결국 살기에 좋은 장소와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환경공학적으로 바꿔 말하면 최적의 자연환경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말했다.

○공학자가 고증한 거북선

추석 안방극장 단골손님인 2014년 영화 ‘명량’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파한 1597년 명량해전을 각색한 이야기로 한국 영화사상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영화에는 이순신 장군이 건조하던 거북선이 불에 타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까지도 거북선이 실제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 문제를 연구해 온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는 올 5월 역사 자료와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거북선의 원형을 새롭게 추정해 그 결과를 ‘한국과학사학회지’에 발표했다.

거북선의 원형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하나는 거북선이 2층짜리 배인지 3층짜리 배인지 여부다. 채 교수는 거북선에 실은 함포의 운용을 고려했을 때 3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채 교수는 “2층은 천자총통 2대와 노를 젓는 공간이고 3층은 17대의 함포를 쏘는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갑으로 덮인 지붕의 경우, 돛을 올리고 내리기 쉽고 병사들이 총과 활을 쏘기 편하도록 철갑 일부가 조금 열려 있었다. 채 교수는 “처음에는 가운데에 십(十)자 모양으로 틈이 열려 있었다가 나중에 일(一)자 모양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한 장면과 각시투구꽃의 실제 모델인 바꽃. 쇼박스·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각시투구꽃에서 현대 신약 개발까지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첫 작품인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독성을 가진 식물인 각시투구꽃을 소재로 전개되는 코미디 영화다.

한의사 출신인 전종욱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는 “영화 속 각시투구꽃의 실제 모델은 동의보감에 기록된 한약재인 부자(附子)”라고 말했다. 바꽃의 뿌리를 건조시킨 한약재인 부자는 ‘아코니틴’ 성분을 약용으로 사용하는 맹독성 약재다. 이 약재를 그대로 쓰는 경우는 사약(賜藥)으로 내릴 때였고, 치료용으로는 반드시 불에 굽거나 물에 삶아 독을 중화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동의보감에는 부자의 약성이 매우 강해 신진대사 기능이 극도로 쇠퇴한 상태를 회복시킨다고 기록돼 있다. 전 교수는 “약리학적으로는 심장근육 수축력 증가, 혈압 상승, 면역증강 작용, 부신피질 흥분 작용 등을 유도한다고 볼 수 있고, 실제 그런 약효 보고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상들이 사용했던 전통 약재는 최근 신약 개발에도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실제 SK케미칼이 개발한 골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의 경우 우리말로 ‘으아리’로 불리는 위령선(威靈仙)이라는 약초 추출물을 이용해 만든 약이다. 전 교수는 “위령선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 의서인 향약구급방에 수레나물로 기록된 약재로 전통적으로 요통과 중풍, 마비증 등의 치료 처방에 들어가며 활용처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과학동아 9월호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다양한 사극 영화를 소재로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해설하는 특집기사를 볼 수 있다.
 
최영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jxabb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