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가고시마현 사쓰마반도
태풍이 지난 뒤 찾은 사쓰마반도 서해안의 동중국해. 환상적인 빛깔의 바다와 초록 섬, 우거진 팜트리가 어울려 빚어낸 이 풍경은 태평양의 하와이를 연상시켰다. 해도8경(미나미사쓰마시)은 이 산허리를 감아 도는 해안도로에 조성한 여덟 개 전망소 앞으로 펼쳐지는 비경의 바다 풍광을 말한다. 사쓰마반도(일본 가고시마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그건 미국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함 때문이었다. ‘세이버리’(savory·달지 않고 짭짤하며 칼칼한 맛)란 단어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그 맛. 일본인이 ‘우마이(うまい)’, 우리는 ‘감칠맛’이라 부르는 미감이다. 미국은 생경한 이 맛의 출처를 찾아냈다. 다시마와 가쓰오부시(鰹節)였다. 그 그윽하고 깊은 맛, 손질한 가다랑어를 1년가량 열과 불로 말리고 도중 피어난 곰팡이로 맛이 들게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태어났음을 확인했다.
사쓰마슈조 시음관인 ‘메이지구라’ 판매장. 모래상 인물이 드라마 ‘세고돈’의 주인공 사이고 다카모리다.
최상품 가쓰오부시는 이렇듯 질감이 도자기와 흡사하다.
마쿠라자키: 가고시마주오역(탑승장 16번)에서 탄 버스가 마쿠라자키 버스센터에 도착한 건 1시간 40분 만. 지난달 하순, 태풍 셀릭이 가고시마 근방을 지날 때라 강풍이 불어댔다. 이곳 중심은 방파제로 둘러싸인 거대한 어항. 그런데 주변 해안은 강풍이 일으킨 사나운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거센 기세로 연신 강타 중이었다.
그런데도 에비산도리(해안거리)에 줄지은 공장에선 흰 연기가 피어났다. 가쓰오부시 가공장이다. 가까이 가니 비린내가 진동한다. 기계로 발라낸 생선 머리와 내장 뼈에서 나는 것이었다. 어항의 수산시장은 여느 시장과 달랐다. 생물은 전혀 없고 가쓰오부시만 보인다. 가쓰오부시도 여러 종류고 여러 질이다. 최상품은 육모 방망이처럼 단단 매끈하다. 그걸 대패로 밀어 종잇장처럼 깎아낸 것도 따로 판다. 하지만 주종은 건조된 원형 그대로의 가쓰오부시다. 가게 주인은 전용 대패를 보여주며 이걸로 먹을 때마다 깎으라고 알려준다.
일본 최남단 철도선 종착점인 마쿠라자키역.
산큐패스 3일권은 북부(후쿠오카 오이타 나가사키 사가 등 4개 현) 7000엔, 남부 6000엔, 전 규슈는 3일권이 1만 엔, 4일권 1만4000엔. 하지만 판매처마다 할인 폭이 달라 실제는 더 싸게 살 수 있다. 최근 개장한 니시테쓰그룹 홍보관 ‘디스커버리 큐슈’(서울 종로구 종로19 르미에르 종로타운 A동 1607)에서 방문·택배(착불)로 가장 싸게 판다. 가이드북도 함께 제공.
여행정보: 가고시마현은 규슈 최남단(북위 31도)이라 한겨울에도 ‘따뜻한 남쪽 나라’다. 그러니 겨울 여행의 적지. 가고시마 공항은 대한항공과 저비용항공사의 한국 직항편이 운항되고 공항버스 정류장이 가고시마현은 물론 규슈 전역으로 통하는 버스센터 역할을 한다. 사쓰마반도에선 이부스키(指宿), 오스미반도에선 가노야(鹿屋)가 교통 중심.
▼쇼추향 가득한 가고시마▼
사쓰마란 이름은 에도시대 이곳의 영지였던 사쓰마(薩摩) 번(藩)에서 왔다. 그리고 NHK의 올 대하드라마 ‘세고돈(西鄕どん)’의 무대로 주인공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降盛·1828∼1877)는 메이지 당시의 영주. 정한론(征韓論·한국 정벌주장)을 펼 정도로 호전적 인물이다. 사쓰마 번 역시 기질이 거친 고장이었다. 사케 같은 발효주 대신 쇼추 같은 증류주 애음도 그런 풍토와 무관치 않다. 물론 중국과 가까워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가고시마는 증류주에서도 특히 고구마로 만드는 이모쇼추의 발상지. 남미 원산의 고구마가 여기로 상륙해서다.
일본 쇼추 역사는 길지 않다. 우리나라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증류 방식이 메이지시대(1868∼1912년)에 완성된 만큼 기껏해야 200년 정도다. 사쓰마슈조의 시음관인 ‘메이지구라’(明治藏·‘구라’는 양조장·마쿠라자키)는 그 역사를 담은 작명이다. 여기서 소주 증류를 개시한 건 1936년. 온가고시마현 거리 광고판에 흔한 ‘시라나미(白波)’가 그것이다. 이 이름은 태풍 때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을 강타하는 사나운 파도에서 왔다.
그런데 요즘 메이지구라엔 찾는 이가 늘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은 데다 사쓰마반도가 무대인 대하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어서다. 하지만 메이지구라에선 더 이상 쇼추가 증류되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주조장을 전시관으로 개조해서다. 대신 지역 명산 ‘가고시마 혼카쿠 쇼추’(本格燒酎·가고시마현에서 가고시마산 고구마만 사용해 단식 증류 방식으로 만든 쇼추)가 판매 중이다. 메이지유신 150주년 및 세고돈 기념 한정판 쇼추(여기서만 구입 가능)가 인기다.
해도8경 북단의 가사사엔 위스키 마니아만 아는 자그만 증류소가 있다. 혼보(本坊)슈조의 ‘마르스 쓰누키 증류소(Mars Tsunuki Distillery·사진)’인데 위스키 증류소로는 일본 최남단이다. 1949년 혼보가(家)가 ‘일본 위스키의 침묵하는 개척자’ 이와이 기이치로와 더불어 창업한 회사인데 위스키 생산은 1960년 야마나시현에서다. 당시 기술책임자는 이와이의 후원으로 스코틀랜드에 유학해 일본 최초로 증류기술을 배워 온 마사타카 다케스루(1894∼1979). 일본 최초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山崎)와 닛카(Nikka)의 창업자다. 이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는 아직 상품화 되지 않은 상태. 그래도 시설(증류기 저장고) 투어는 할 수 있다. 증류소 옆 고풍스러운 집은 1933년 건축한 혼보가의 저택. 시음과 구매는 여기서 한다. 대표 브랜드인 마르스는 저팬알프스 산악의 고마가타케 중턱 산중(해발 798m)의 신슈증류소(나가노현)에서 생산, 숙성됐는데 애호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위스키(몰트·블렌디드)다.
혼보슈조의 신슈증류소에서 생산된 위스키 마르스(Mars).
사쓰마반도(일본 가고시마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