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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의 사회적 기업가 인큐베이팅 시설 ‘소셜 이노베이션 랩’에 설치된 ‘성별 평등 화장실’. 이 화장실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만은 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 공식에 따라 성불평등지수(GII)를 자체 계산한 결과 2015년 기준으로 0.058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남녀가 평등하다는 의미다. 같은 해 기준 한국(0.067), 싱가포르(0.067), 일본(0.118)보다 성불평등 정도가 낮았다는 것이다. UNDP가 14일 발표한 ‘2018 GII’에서 아시아 1위를 한 한국(0.063)보다 낮은 수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대만이 양성평등 수준을 빠르게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3분의 1 성별 쿼터제’가 큰 역할을 했다. 대만 정부는 2005년부터 입법원(한국의 국회 격)과 정부 기관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을 3분의 1 이상 포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98년 19.1%였던 입법원 여성 의원 비율이 2018년 현재 38.1%까지 높아졌다.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이 17%, 일본 중의원 여성 비율이 10.1%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덴마크(37.4%), 영국(32%·하원)보다도 높다. 대만은 지방의회(34.6%)와 감사기관인 감찰원(48.3%), 공무원 채용 기관인 고시원(42.1%) 등도 쿼터제를 충실히 지키고 있다.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 성소수자 이슈 논의가 활발한 편이다. 대만은 11월 있을 지방선거 때 동성혼 합법화와 관련한 국민투표를 함께 치를 예정이다. 판윈(范雲) 대만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4년 도입된 양성평등교육법의 영향으로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 동성혼 찬성 여론이 많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여성단체 ‘어웨이크닝 파운데이션’이 중고교에 배포하는 교사 참고용 브로슈어에 담긴 동성결혼 관련 내용. 어웨이크닝 파운데이션 제공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주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대만국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이주민 대사(大使)’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을 도슨트(작품 해설자) 자원봉사자로 활용해 이들의 모국어로 박물관 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10명의 이주여성이 도슨트로 활동 중이다.
이곳에서 4년째 봉사활동 중인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린다 진디아와티 씨(42)는 “인도네시아어로 사람의 눈을 뜻하는 ‘마타’가 대만 토착어로도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면 관광객들은 마치 고향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국립고궁박물관 등 대만 내 다른 박물관들도 이 프로그램 운영과 관련해 조언을 구할 예정이다.
대만이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3분의 1 성별 쿼터제’는 권고일 뿐 의무가 아니어서 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는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성인 차이 총통이 이끄는 현 내각조차 여성 비율이 20%에 미치지 못한다.
▼ 대만 내 이주여성 돕는 단체들 ▼
“처음엔 언어 때문에 고생했어요. 하지만 방문객들에게 모국의 문화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어 기쁩니다.”
5일 타이베이 대만국립박물관에서 만난 린다 친디아와티 씨(42)는 10년 전 대만에 온 인도네시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다. 4년째 그는 주말마다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 ‘케바야’를 입고 이곳을 찾는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에게 모국어로 박물관 소장 유물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박물관 교육을 통해 대만 역사와 문화를 배우면서 대만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만에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이주 여성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이거나 가정부, 간병인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만 이민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대만 내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은 약 16만 명, 여성 이주노동자는 25만 명가량이다. 이들을 위해 대만의 여러 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만국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이주민 대사(大使)’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을 도슨트(작품 해설자) 자원봉사자로 활용해 이들의 모국어로 박물관 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친디아와티 씨를 포함해 10명의 이주여성이 이곳에서 도슨트로 활동 중이다.
이주여성의 인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단체들도 있다. 대만 내 성매매·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비정부기구(NGO) ‘가든 오브 호프 파운데이션’은 2012년부터 인신매매나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을 돕고 있다. 피해 유형에 따라 법률적 지원을 하거나 쉼터를 제공한다. 지난해 여성 이주노동자 4276명이 이 단체의 도움을 받았다.
2000년대부터 여성 이주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주장해 온 대만의 대표적인 여성인권단체 ‘어웨이크닝 파운데이션’은 최근 가정부, 간병인 등 가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친츠팡 어웨이크닝 파운데이션 소장은 “가정 내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며 “이로 인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심지어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이베이=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