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집값이 오르는 책임을 다주택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은 정치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집값과 주거를 안정시키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8·2대책 이후 서울 주택시장에서 나타난 2번의 폭등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오히려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편협한 다주택자 때리기 정책의 부작용이 풍선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금 부담이 무주택자인 4∼6계급에 전가되는 효과도 있다. 정부는 작년 말 도입했던 다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조치를 이달 초 철회하고 9·13대책에서 다주택자들의 종부세율을 크게 올렸는데 늘어난 세금 부담이 세입자들에게 떠넘겨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도 이런 전가효과의 존재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주택자를 투기꾼과 동일시하는 현 정부가 애초에 다주택자들에게 세금 혜택을 줬을 이유가 없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잡으라는 집값은 못 잡고 전 계층에 상실감을 안기는 방향으로 꼬이게 된 원인은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사철 등 일시적인 수요 증가 요인을 고려하면 주택 보급률이 110%는 돼야 적정 수준인데, 2015년 현재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96%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 국민의 80%가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는 취향을 고려하면, 아파트에 대한 수급의 괴리는 주택 보급률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정부는 지난주 9·13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지역은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자인하고 21일 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한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아직 미지수여서 그 효과 또한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정책이 내성(耐性)만 키운다는 사실만큼은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여 간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