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석 도쿄 특파원
1992년 ‘슈퍼몽키스’라는 그룹으로 데뷔한 아무로는 1995년 솔로로 전향해 당시 ‘히트곡 제조기’라 불렸던 프로듀서 고무로 데쓰야와 잇달아 밀리언셀러 히트곡들을 내며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가녀린 몸매와 이국적인 외모는 일본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다. 짙은 화장, 통굽, 긴 생머리 등 아무로의 패션을 따라하는 ‘아무러(Amurer)’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그의 인기는 헤이세이(平成·1989년 시작된 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를 대표하는 일본 사회현상이 됐다. 일본 음악이 개방되기 전인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음반이 몰래 수입되거나 복제판이 나돌 정도였다.
26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한 아무로의 은퇴에 일본 사회가 아쉬워하고 있다. 온라인에는 팬들이 그의 히트곡 ‘히어로’를 합창하며 고마움을 표현한 영상들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팬들은 또 16일자 아사히신문에 감사의 메시지를 4개 면에 걸쳐 싣기도 했다. 롯데, 고세 등의 기업들도 그에게 감사했다는 내용의 광고를 잇달아 만들어 공개했다. ‘아무로가 없는 시대’라는 뜻의 신조어 ‘아무로스(Amu+Loss)’도 등장했다.
특히 은퇴 발표 후의 행보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은퇴를 발표한 후 그는 26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3장짜리 베스트 앨범 ‘파이널리’를 한 달 반 동안 준비해 그해 11월 내놨다. 기존 히트곡을 그대로 수록해도 됐지만 그는 히트곡 39곡을 지금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하며 마지막까지 성의를 보였다.
그 성의는 자신의 고향인 오키나와에 대한 애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본토에 붙어 있지 않아 자칫 소외되기 쉬운 오키나와섬을 위해 중요한 순간마다 찾아가 공연을 열어 왔다. 마지막 공연지 역시 오키나와였다. 은퇴 직전에는 우익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을 반대하던 오나가 다케시 지사의 별세 소식에 추모 글을 게재하며 고향을 챙겼다.
아무로와 아무 관련 없는 금융계 인사인 후지와라 고지 일본전국은행협회장은 13일 정례회견에서 “음악과 인생, 팬에게 열과 성의를 다해 온 그의 모습은 업계를 뛰어넘어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예의, 인생에 대한 뚝심, 자신에 대한 당당함 등을 지금의 일본 사회가 ‘은퇴 가수’를 통해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