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 놓으며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조선의 사대부 여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 모 방송사 드라마 속 남주인공의 말이다. 정말 조선의 사대부 여인들은 드라마 속 남성 주인공의 눈에 비친 것처럼 꽃처럼 살았을까? 그리고 그러한 삶에 만족했을까? 그랬을 리 만무하다.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강요했던 역할들은 물론이고 집안이 몰락했을 경우 가정경제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허다했던 여성들의 삶이 꽃처럼 귀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의 여성들은 여러모로 억압적인 환경에서 지냈다. 따라서 그녀들은 억압된 규율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판타지가 필요했고, 여성영웅소설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 때문에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남장을 하고 남성을 능가하는 용맹한 능력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여인들이 바랐던 판타지가 소설 속 여주인공의 활약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무렵 북쪽 오랑캐가 다시 침입하였고, 수정은 다시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이제는 남성의 모습으로 나설 필요 없이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국가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 장연은 수정이 대원수가 아닌 자신의 아내라는 생각에 그녀가 내린 명령과 지휘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를 안 수정은 군법으로써 부부관계라는 사적 관계를 무시하고 남편을 처벌하였다. 그리고 남편에게 공사 구별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수정의 뛰어난 능력과 리더십 덕분에 국가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국가는 그녀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인정해 준다. 남편 또한 더 이상 그녀에게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조선이라는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성영웅소설은 19세기 한복판에서 주체적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고전소설 속에서 정수정을 불러낸 이유이기도 하다.
임현아 덕성여대 언어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