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 훈춘시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북한 세관 바로 옆에 자리한 대형 수산물시장. 훈춘·투먼·옌지=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지린(吉林)성 훈춘(琿春)시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북한 세관 바로 옆에 대형 수산물시장이 최근 문을 연 뒤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수산물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출 금지 제재를 회피하는 모습이 동아일보·채널A 취재진에게 포착됐다. 이 시장 건물은 중국 기업들의 자금 물자 지원으로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중국의 제재 이행 의지가 의심받고 있다. 특히 건물 완공 시점이 공교롭게도 안보리가 북한의 수산물 수출 금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중국이 관련 제재 이행을 시작한 지난해 8월이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7일 찾아간 훈춘시 취안허(圈河) 해관(세관) 앞 매표소 옆에선 “날강도 미제를 무찔러, 조국 승리의 역사가 빛나는…” 등의 반미 가사가 담긴 북한 선전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날 오후 버스편 등으로 훈춘에 도착한 중국인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당일치기 ‘북한 수산물 시장 투어’ 표를 샀다. 이들의 목적지는 두만강 맞은편 북한 나선시 원정리 세관 옆 대형 수산물시장인 원정국경시장이다.
이 시장은 올해 7월 10일부터 중국 관광객들에게 개방됐다. 개장 이후 매일 수백 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시장을 방문하면서 관광료가 개장 당시보다 3배나 뛰었다고 한다. 현지 관계자는 “중국인들은 여권이 없어도 세관에서 임시통행증만 만들면 (북한 시장을) 관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 중국인들은 “북한 수산물 수출 금지 전 취안허 세관은 북-중 수산물 무역의 주요 관문이었지만 제재로 수산물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북한 측에 시장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관광객들이 탑승한 소형 버스들이 낡은 두만강대교를 통해 북한 수산물 시장에 속속 도착했다. 7월 이후 두만강대교는 사실상 수산물 시장 관광 전용도로가 됐다. 2016년 말 완공된 바로 옆 편도 2차선의 신두만강대교가 훈춘과 나선을 오가는 물류의 관문이라면 두만강대교는 북한의 수산물 수출 금지를 회피하는 관문이 돼버린 것이다.
취안허 인근에서 취재진과 만난 현지 중국인은 주목할 만한 증언을 했다. 그는 “수산물 시장 건물 자체는 지난해 8월 완공됐고, 시멘트 등 건축 자재와 자금 등을 모두 중국 기업들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안보리 제재를 피해가려는 북한을 도왔다는 의미다.
이날 북한으로 가기 위해 취안허 세관 앞에 있던 20여 대 화물트럭 중에는 유독 냉장차가 많았다. ‘냉장차 안에 뭐가 있느냐’는 물음에 한 운전기사는 “수산물은 없다”고 몇 차례 손사래를 치면서 “모두 부엌용품과 플라스틱 제품”이라고 말했다
안보리 대북 제재로 북-중 무역 주요 관문 중 하나인 취안허 세관을 통한 수출입 물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현지 관계자는 “예전엔 세관 앞에 트럭 200여 대가 쭉 늘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많아야 하루 몇 십 대”라고 말했다.
중국이 북-중 합작기업을 올해 1월 모두 퇴출시켰음에도 중국 내 북한 식당이 여전히 합작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날 오후 훈춘시 북한 식당에서 만난 한 종업원은 ‘식당이 누구 소유냐’라는 질문에 “(북-중) 합작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답했다.
18일 찾아간 훈춘시 인근 지린성 투먼(圖問)시 해관 앞에서는 두만강 맞은 편 북한 남양군으로 이어지는 새 대교 건설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중국인은 “새 대교 건설에 들어간 돈은 모두 중국 자금”이라고 말했다.
훈춘·투먼·옌지=권오혁 특파원 hyuk@donga.com